긴 결빙의 강을 거슬러 오르는 상류엔 소리없이 녹아 흐르는 조용한 해빙의 투명한 물소리로 벌써 봄의 속삭임이 시작되었을 것 같은 예감이 들면서부터 耳鳴처럼 졸졸졸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작은 심장의 박동소리처럼 흐르는 평균률의 흐름은 바하의 음악을 듣는 것 같다. 오래된 쳄발로의 단아한 리듬감으로 쉬지않고 흐르는 봄의 소리가 이미 두꺼운 얼음속을 지나 겨울의 가장자리에서 파릇하게 살아나는 요즘 문득 바하의 음악이 듣고 싶다 생각했는데 엊그제 블로그화 된 후 알게된 칼럼방에서 바하의 음악을 연주한 글렌 굴드가 소개되어 반갑고 기뻤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오래전 그냥 이름만 알고 있었는데 아침 출근길에 우연히 F.M에서 며칠동안 그에 대해 조금씩 소개하는 걸 듣게 되었다.
유명한 예술가 치고 평범치 않은 사람 거의 없듯이 그의 예술혼은 많은 奇行과 비평속에서 그만이 피워 낸 고독하면서도 순수한 꽃으로 새로운 음악사를 장식하고 있었다. 음악에 대해선 거의 자폐아적인 천재성의 예술혼을 불사른 그의 연주와 고독한 내면의 세계는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고립속에서 차가운 얼음속을 흐르는 해빙의 물소리처럼 마니아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글랜굴드란 이름을 알고부터는 내게는 광기에 가깝다 한 奇人이기에 앞서 순수한 예술에 있어선 열정과 고집으로 한 생을 고독하게 살다 간 자유인으로 기억되려고 한다. 그의 時적인 해석으로 연주된 바하의 피아노곡을 들으며 난 불현듯 그의 일생을 더듬기 위해 인터넷 검색어에 <글렌굴드>란 이름을 쳐 보았다. 아래 소개하는 글들은 인터넷에 올려진 블러그의 내용중에서 옮겨 짜깁기한 이야기들이다. 내 스스로 <글렌굴드>란 생소한 이름을 낯설지않게 하기 위해 하루동안 그의 음악사에 귀 기울여 본다.

지난 ‘객석 ’98년 5월호에서 ‘연주가의 세기’였던 20세기를 대표하는 ‘10인의 피아니스트’를 자체적으로 선정해 발표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 글렌굴드가 “20세기를 빛낸 피아니스트”가운데 10위에 랭크되었는데, 피아니스트로서의 그의 바흐에서의 위상을 실감하게 하였다. 그는 피아니스트로서 주어진 짧은 생애을 고독하게 살았으며, 자기 삶을 바흐연주에 희생적으로 몰입했던 것 같다. 굴드가 바흐에 집착한 이유는 바흐의 음악이 자신의 삶과 속내를 표현하기에 적합했었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불멸의 레코딩인 골드베르그 변주곡(81년 레코딩)을 보면 극히 사색적이고 고독감이 진하게 느껴진다. 55년 골드베르그 변주곡, 파르티타 곡들에서도 쾌도난마의 분위기를 직설적으로 나타내지만 역시 음악의 이면을 흐르는 면면에는 그의 외로움이 배어져 있다. 한편으로 그는 피아노와 바흐를 마치 장난의 대상인 친한 친구처럼 여기는 것 같은데, 이는 역설적으로 그가 인간적으로 얼마나 외로운 사람이었나를 암시하기도 할 것 이다.
그의 삶 자체를 관찰하지 않고 그의 독특한 연주 스타일을 예단하지 않더라도 그의 음악에는 외로움을 떨쳐버리려는 시도들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개인적인 그의 삶은 타인에게 권하지 못할 정도의, 불행 그 자체였지만 그가 남긴 아름답고 강력한 멧세지를 전하는 레코딩들은 굴드를 오늘날까지 우리들 가슴에 살아 숨쉬는 석상같은 존재로 만든다. 바흐해석에 있어서 설정되어진 그의 불행한 포지션은 바흐를 위해서 누구라도 하였어야 할 책무임이 분명한데, 그것을 굴드가 한 것이리라! 바흐해석을 위해 그가 고난의 십자가를 진 것 이리라! 다른 모든 것을 접어두고 음악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의 음악은 우리에게 남긴 위대한 정신적 자산이라고 여겨도 무방할 것이다. 위의 간략한 그의 일대기에서도 소개되었듯이 굴드는 토론토 왕립 콘서바토리를 졸업했지만 유럽이나 미국에서 별도의 음악교육을 받은 일이 없었다.
바로 이 점이 굴드의 매우 특이한 연주스타일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음악의 중심지'가 그의 성장환경에서 빠져 있는 것이다. 굴드는 빈은 물론 프랑스에서도, 모스크바에서도 음악을 배우지 않았으며 19세기의 흐름을 이어받은 대가들에게 사사받은 일도 없었다. 그 영향이었는지 그의 음악은 고전적인 형식에 구애받지 않았으며 템포의 설정도, 프레이징 도, 장식음의 처리도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여기에 기괴한 그의 성격까지 더해져서 당시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기상천외한 굴드의 음악이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굴드가 만들어내는 그 강렬한 개성 못지 않은 중요한 특징으로 음악에 대한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을 빼놓을 수 없다. 유럽에서 활동한 음악가와는 달리 미국 대륙에서 활동한 덕분에 비교적 풍부한 영상자료가 남겨져있어 피아노를 연주할 때의 기괴한 표정과 허밍, 고무로 만든 놀라운 의자, 호로비츠 못지 않게 불량한 연주자세 등을 비교적 생생히 관찰할 수 있는데, 이러한 모든 특이점은 그의 음악에의 몰입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대의 음악가들이 무대 위에서 취하는 제스츄어를 모두 쇼맨쉽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굴드의 연주자세는 청중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바흐 음악에 대한 집중력이라는 의미에서 굴드는 바흐 전문가인 칼 리히터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다. 독일적인 전통을 이어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두 사람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생기게 된 것이다. 굴드는 바흐의 음악에 잠재하는 본질을 확실히 이끌어 내면서 지금까지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했을 정도로 자유롭게 바흐를 연주했다. 그는 현대 피아노를 사용하였고, 주법도 바흐시대의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굴드가 만들어내는 자유로움은 그 자체가 바흐의 연주에 가장 중요한 것이면서 우리가 그 동안 잃어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악보를 있는 그대로 소리로 만들어내는 행위의 무미건조함을 굴드는 의표를 찌르는 연주를 통해 새삼 느끼게 해 주었던 것이다. 바흐가 곡을 작곡하는 도중에 도취되었음에 분명한, 약동하는 생명력을 굴드는 극히 현대적인 형태로 다시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굴드의 첫번째 녹음인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1955년 6월에 CBS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다. 이 때에 뉴욕에 나타난 굴드의 기괴한 모습은 이미 유명한 일화가 되어 버렸지만 여기에 간단히 소개한다. 6월의 뉴욕에 나타난 굴드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두터운 코트에 머플러를 두르고 베레모에 장갑을 끼고 있었다.뉴욕의 물은 마실 수 없다면서 식수로 사용할 두 개의 물병을 지니고 5개의 약병과, 그 유명한 의자까지 가지고 왔던 것이다. 이 의자는 다리가 모두 고무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연주할 때 몸의 각도에 따라 자유자재 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었다. 연주에 들어가기 전 굴드는 두 손을 20분간 더운 물에 담그고 자신이 가져온 수건으로 손을 닦아 냈다. 녹음이 진행되는 동안 굴드는 도취된 상태에서 입을 벌리고 노래를 불렀으며 몸을 앞뒤로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했다. CBS의 녹음기술자들은 굴드의 허밍을 녹음하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결국 이 때 제작된 음반은 레코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음반 중의 하나가 되었고 발매 당시에도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며 굴드를 국제적으로 유명한 연주자로 만들게 된다.
그의 바흐연주는 완벽했다. 마치 마술같은, 3차원의 바흐였다. 정교한 아티큘레이션, 자연스럽고도 과장되지 않은 흐름, 프레이즈 하나하나가 다 살아 숨쉬는 듯 했다. 그러나 정작 연주 자체보다도 청중들을 경악시킨 것은 굴드의 파격적인, 아니 차라리 기이한 무대 매너였다" 그가 피아노에 코를박고 리듬에 따라 앞뒤로 몸을 흔들면서 연주를 하거나, 연주하며 음을따라 흥얼거린다던가, 감기 들었다고 예고없이 당일로 연주를 취소 한다던가, 연주중 한손이 자유로울땐 오케스라를 지휘하듯이 손을 흔든다거나 하는 등등의 이야기는 너무 유명합니다.글렌굴드는 모차르트의 초기작품을 좋아했지만 작곡가로서 모차르트를 싫어했는데 이유는 너무 오래살아서 쓸데없는 작품들을 많이 내 놨다는 것이지요.
각종 잡지에 왜 모차르트는 나쁜작곡가인가 하는것등을 기고했고 작곡가 쇼팽이나 슈만등을 비난하는 글을 쓰기도 한 반면 글렌이 30대에 가졌던 또 다른 야망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녹음하는 것이어서 결국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을 10년에 걸쳐 그의나이 42세때 녹음을 끝냈다고 합니다.또 같은 해에 녹음한 바흐의 '평균율' 2집에서 보여준 글렌의 연주는 가히 기록할만한 것이었는데, 전혀 예상치 않았던 부분에서 느닷없이 나타나는 장식음들이나 무한정 자유로운 템포, 전통적으로 레가토로 연주하던 부분을 스타카토로 처리하고 반대로 코드에서 아르페지오를 시도하는 등 글렌의 연주는 파격 이상이었지만 이 음반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글렌의 시각은 '딱딱하고 어려운 음악'이라는 바흐에 대한 고정관념을 보기좋게 깬 것이었는데, 그의 연주는 너무도 시적이며 아름다웠지만,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템포 때문에 글렌이 실내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글렌굴드는 특별한 인물이다. 먼저 그를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그가 광인이었음을 먼저 전제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강박신경증에 시달렸다. 그는 항상 주변에 득시글거리는 세균과의 전쟁을 치러내느라 일생을 힘겨워했고 집에 혼자 있을 때도 항상 에프킬라처럼 생긴 소독약들을 양손에 쥔 채 살아야 했다. 또 어머니에 대한 외디푸스 콤플렉스는 그에게 퇴행으로 작용하여 어린시절 어머니가 챙겨준 피아노 의자의 환상속에서 수 십년간 머물렀고 그에게 그것은 어머니의 자궁이었다. 때문에 그의 연주는 어린시절 앉았던 어린이용 피아노 의자의 눈 높이에서만 이루어진다. 그는 직접 제작한 낡아빠진 어린이용 피아노 의자에 앉아서 연주를 해야했기 때문에 그의 연주회에 대한 인상은 연주 그 자체보다 오히려 구부정한 허리. 움츠러 든 어깨, 코가 거의 건반에 닿을 정도로 구부러진 목등 음악외적인 부분이 더 강하게 남는다.

<사진 자료: BACH2138님의 블로그 >
2005. 2. 15 일. 먼 숲.
Glenn Gould / 피아노 소품 모음
베토벤 / 피아노 협주곡 3번 - Glenn Gould Piano
1악장, Allegro con brio
Glenn Gould Piano Leonard Bernstein Cond. Columbia Symphony Orchestra
ndo - Alleg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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