紫雲山의 쪽빛 호수

섣달 그믐날

먼 숲 2007. 1. 25. 22:07

 

 

 

 

 

 

 

 


     동구밖까지 고갤 내민 짧은 해를
     수선스런 까치들이 쪼아내려
     볕드는 툇마루에 주저앉혔다
     기다림으로 움푹패인 저녁해에
     새눈물처럼 고인 보고픔이 찰랑댄다.

     물난리진 한 해 동안
     나락 한 톨 까지 거둬들여도
     주워담지 못한 그리움만은
     빈 벌판 가득 펼쳐져
     겨울은 길고 쓸쓸했다.

 


     다 떠난 야윈 가슴은
     삼백예순날 식어버린 냉골이지만
     설날 하루만이라도 불을 지피려
     젖은 아궁이에 불씨를 넣는다.

 

 

 

 

 

 

 



     말라붙고 뭉그러진 젖무덤이지만
     내일은 젖냄새나는 고향을 찾아 올
     아직도 강아지같은 새끼들을 위해
     쭈그러진 이남박에 쌀을 씻는다.

     빈 세월의 끝에서
     일어 낼 돌맹이조차 없는데
     그을음만 남은 부엌에서
     자꾸 헛조리질만 하면서
     희미한 기억들을 건져 올린다.

     사랑도,추억도,그리움도 다 사위어
     그믐달처럼 굽어지고 가늘어졌지만
     오늘만은 보름달같은 등을 밝히려
     심지를 돋우고 등잔을 닦는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목숨의 불을 켠다.



      2004.1.5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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