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파 (寒波)』
예고도없이 엄습하는 게릴라처럼 한파는 주로 새벽을 급습해 버린다 貧村의 낮은 언덕을 넘어 헐벗은 골목을 헤집고 나와 통행인도 없는 지하도까지 파고들어 펄럭이는 신문지 조각속에서 노숙을 한다
한파는 고달픈 삶의 입김이 증기기관차의 굴뚝처럼 쉭쉭대며 지나는 행인들 속을 썩은 동태처럼 버려진 인생들이 값 싼 동정마저 지친 멸시와 외면으로
고달픈 삶의 입김이 증기기관차의 굴뚝처럼 쉭쉭대며 지나고 썩은 동태처럼 버려진 인생들이 값 싼 동정마져 지친 멸시의 눈빛에 희망은 시신처럼 차가워질 때
동장군은
절망으로 동여 맨 구두발자국 소리를 내며 점령군처럼 쿵쿵거리며 지나간다 가난은 목숨처럼 질겨 강추위에 아랑곳없이 오돌오돌 떨고 서 있고
껴입고 껴입어도 가릴수 없게 헤진 구멍으로 남루한 치부를 드러내 놓지만 언제나 마천루같은 환상과 환락으로 눈부신 조명을 받으며 부의 상징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이미 혼탁한 세상은 록카페의 소음처럼 멍멍히 청각을 잃어 종종거리는 미약한 맥박은 들을 수도 없고 소통될 수 있는 주파수는 길을 잃고 엉켜 있어 한파의 고저와 기압골의 근원조차 관측하지 못한다
거리엔 찬바람이 훑고 지날적마다 뒤집어진 붕어빵이 경기를 하며 굳어져 가고 검은 비닐봉지에 숨은 체감온도는 심장을 얼리는 회오리바람으로 맴돈다
지금처럼 한파에 움츠린 시각은 서둘러 봄을 얘기할 순간이 아니다 성급히 기력을 소진할것이 아니라 차라리 꽁꽁 얼어버린 채로 동토의 겨울이 되어야 한다 언제나 반복되는 시베리아의 추위일 뿐이다
내일은 소복소복 하얗게 더운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슬픔의 정갱이쯤까지 눈이 쌓여 홑겹같은 시름 벗고서 포근한 눈이불 덮은 채로 행복한 거지처럼 빨래나 하고 싶다
그 때가 아직 먼 것처럼 눈도 오지 않는 겨울가뭄이다
2001.12.14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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