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단조롭고 지겨운 겨울 잘 보내셨습니다
하루살이가 굴속처럼 어둡고 답답하셨을텐데
혹여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시지 못할까 저어하였는데
굳어있던 작은 또아리를 풀고 봄을 맞으셨으니 다행입니다
긴 겨울, 어디 나다니실 기력도 없이 감옥살이하시는 하루를 보면
자식으로서 저도 먼 훗날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했습니다
경칩이 지난지 여러날 되었으니 봄 기운이 짙어오네요
땅이 녹아 질척거리는 촉촉함이 생기있어 보입니다
이제 곧 어머니도 걸음마하는 아이들처럼 밖으로 나오셔야지요
올핸 또 작년보다 더 여위셨으니
먼 텃밭을 오갈 기운도 없으시겠지만
사월에 파종을 하고 파릇한 새싹을 보시면 한결 기운차리실겁니다
긴 겨울 지나 씨를 뿌리려고 종자를 고르시는 삼월이 오고
올 봄 밭고랑에 무얼 심을까 하시면서
마음으로 땅마름질을 하시는 걸 보니 얼나마 기쁜지 모릅니다
다시 생명을 기르고 참견하시다 보면
올 한해도 너끈히 보내실거라 생각합니다
하여 저도 겨울이면 얼른 어머니의 봄이 오길 고대합니다
사람도 자연인지라 바람을 쐬고 흙을 만져야 산다는 걸 알거든요
가끔 삼월이면 노랑병아리가 생각납니다
저 어릴적, 부화된 병아릴 기르기 전엔
이른봄부터 암탉이 오랫동안 알을 품어 병아릴 부화시켰지요
새풀이 돋을 무렵 암탉은 노랑병아릴 데리고
마당가를 헤집으며 먹일 쪼아 먹던 풍경이 삼삼합니다
어미랑 텃밭에서 흙목욕을 하며 놀다 수리나 매가 나타나면
쪼르르 달려와 어미 날개쭉지속으로 숨어버리곤 했습니다
쉰을 넘은 늦은 나이에 그런 풍경이 그리워지는 건 왜인지요
그것은 아마 살아 온 날들이나 자식을 품고 사는 인생살이가 마치
어미 품을 종종거리고 쫓아다니던 병아리 같아 웃음이 납니다
더구나 아직도 전 마음이 퇴화되어 부화되지 않은 채
보드라운 암탉의 품속에서 알처럼 숨어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고
다시 돌아가 어미품에서 부화되지 않은 알이 되고 싶은가 봅니다
문득 삭정이처럼 뼈만 남은 어머니 가슴을 보니 젊은날의 어머니가 그리워
주책없이 포근한 암탉의 품속을 생각했습니다
어머니, 한겨울 잘 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봄은 어머니의 계절입니다
2008.3.11일 먼 숲
<사진: 정지윤 기자의 사람과 풍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