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봄을 훔치다

먼 숲 2008. 2. 2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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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길을 가다 날마다 마주치는

외우진 공원화장실 옆 산수유 두서너 그루의

도드라진 꽃망울을 탐했다

하늘로 솟구치는 우듬지 맨 아래

 작은 꽃가지 하나를 도둑질한 것이다

욕심인줄 알면서도 꽃나무가 미워할거라 생각하면서도

봄을 향해 뻗어가는 나무가장이처럼

꽃을 향한 내 손길의 유혹을 멈추지 못했다

도둑질한 두근거림보다

꽃망울이 터질 기다림에 더 두근거렸다

 

이 참을 수 없는 꽃도둑질은 아주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고백하건데 종종 들길을 걷다

봄이면 개나리, 여름이면 들꽃, 가을이면 억새같은 계절꽃을 보면

나는 순간을 자제하지 못하고 저지르는 상습범인 셈이다

어릴 적 꽃샘바람이 부는 이른 봄이면

 엎질러진 소금처럼 잔설이 남아있는 산비탈을 헤메다

노란 꽃망울을 두꺼운 외피에 감춘 외로운 생강나무꽃을 만나곤 했다

우리 뒷산에서 가장 먼저 피는 생강나무 꽃가지를 꺾어다

푸른 사이다병에 꽂아 놓으면 얼마 후 책상위에서

노오란 쪽두리 같은 수줍은 꽃이 환하게 피어났다

 

나는 그 기억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몰래

내게 눈길을 준 산수유를 보고 봄을 훔친 것이다

저녁도 미룬 채 꽃가지 하나를 작은 화병에 꽂아 거실에 놓고는

가슴에 봄을 품은 듯 기쁜 마음으로 꽃망울을 바라보았다

비록 꽃가지 하나인데 마치 봄이 집안 가득 들어 온듯

마음이 꽃처럼 환해지고 부자같았다

나는 변명할 것이다

순전히 저 앙증맞은 산수유꽃망울이 나를 유혹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그걸 지켜 본 봄바람에게

내 죄를 용서하고 봄향기로 변호해달라고 부탁할것이다

 

봄을 훔친 큰 죄를

 

 

2008.2.28일.  먼     숲 

 

 

 

 

 

 

< 사진 : 블러그 체칠리아의 또 다른 루니아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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