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무릉도원

먼 숲 2007. 4. 2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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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봄의 산사 (春晩題山詩)

 

 

                                                                                                                     진  화

  

                                                                             비 온 뒤 뜰에는 이끼가 파랗게 돋아나는데 
                                                                             사람은 일 없어 한낮에도 사립문은 열리지 않네 
                                                                             파란 섬돌엔 낙화가 한 치나 쌓여 
                                                                             봄바람에 동으로 서로 쓸려다니네 

  

                                                                             雨餘庭院簇莓苔  우여  정원 족 매태 
                                                                            人靜雙扉晝不開  인정 쌍비  주 불개 
                                                                            碧砌落花深一寸  벽체 낙화   심일촌 
                                                                            東風吹去又吹來  동풍   취거우 취래

 

                                                                                    <블러그 호암산방에서> 
                             

   

 

 

 

 

 

 

엊그제 잠시 도심을 벗어나 떠나는 야유회 길에서 만난 차창 밖의 풍경은 그야말로 올려진 사진속의 풍경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봄 비 그친 사월의 산은 산벚꽃과 산도화, 진달래가 꽃구름처럼 피었고 물오른 활엽수들의 새싹이 능선을 타고 오르는 유록의 번짐으로 싱그럽다. 산안개 피어나는 골짜기를 따라 소리없이 흐르는 시냇물과 파릇하게 짙어지는 풀빛사이로 자잔하게 핀 들꽃이 봄의 언어가 되어 소근거린다. 꽃이 지고 잎이 피는 나무는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잔가지마다 새록새록 잎이 피는 사이 산빛은 초록을 향한 행진으로 경쾌하다. 梨花, 桃花 만발한 산자락을 따라 산을 휘감은 산안개의 풍경이 실로 무릉도원이라 할 만 하다. 서산지방을 지나 안면도로 가는 사이 차창을 스치는 풍경은 그렇게 봄의 절정이였다. 시골의 붉은 황토밭은 밭갈이를 마치고 간간이 고추를 심거나 감자씨를 넣고 있었고 드넓은 간척지를 앞에 둔 논배미에선 못자리 준비가 한창이다. 인적없는 농가들이 적막하기만 한데 그나마 추운 겨울을 보낸 마늘밭과 보리밭의 초록이 고적한 시골마을에 생기를 불어 넣고 있다 

 

문득 차창을 스치는 풍광에 마음을 놓고 있으려니, 그 옛날 중국 진(晉)나라 때 호남(湖南) 무릉의 한 어부가 배를 저어 복숭아꽃이 아름답게 핀 수원지로 올라가 굴속에서 진(秦)나라의 난리를 피하여 온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하도 살기 좋아 그동안 바깥세상의 변천과 많은 세월이 지난 줄도 몰랐다는 전설적인 무릉도원은 어디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신선이 살았다는 별천지가 따로 없고  미풍에 온 대지가 깨어나 생명의 찬가를 부르는 이 곳, 사월의 풍경이 무릉도원이 아닐까 새삼 생각하게 한다. 살아남기 위해 숨막히는 경쟁과 심적 스트레스를 안고 사는 현실을 벗어난 마음의 외곽, 잠시나마 삶의 시름을 잊고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곳이라면 그 곳이 어디든 간에, 꽃이 피고 새가 우는 곳이 아니라 해도 번잡한 속세를 잊을 수 있다면 그 곳 또한 무릉도원이 아닐까 한다. 희말라야의 설산이 보이는 비경의 라다크나 따듯하고 풍요로운 남국의 섬이라 해도 내 마음이 편치 않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림처럼 아름다운 저 사진속의 목가적인 풍광은 내가 살지않고 현실을 벗어나 바라보는 곳이기에 무릉도원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많은 욕심을 버리고 중심에서 소외된 고독함에서 스스로 자유로움을 찾지 못한다면 삶은 외롭고 쓸쓸한 일상으로 늙어갈 것이다. 사는 곳이 어디든 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곳이면 비록 사는 곳이 누추하고 소란스럽더라도 거기가 무릉도원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상상하는 무릉도원은 그저 마음속의 고향인지도 모른다. 갈 수 없는 피안의 저 쪽처럼 마음속에 자리한 나만의 오지이거나 내가 살던 빈 집일 수도 있고 내 고단한 영혼이 쉬고 싶은 신기루속의 쉼터는 아닐까. 어디론가 떠날 적마다 수시로 변하고 자리잡는 마음의 고향은 그리움처럼 남아있어 마음의 지도는 내가 여행자가 되어 떠날적 마다 길 위에서 집을 짓고 길 위에 그리운 이정표를 남기곤 떠난다. 나는 꽃이 피고 새 잎이 파릇하게 돋는 사월속에 들면 조용한 산골이나 시골마을 어디든 무릉도원이 되는 것처럼 마음 설레고 평화로워 진다. 샹그릴라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내 마음속에서 길을 열고 길을 가게 한다. 이제 저 연두빛 산빛이 푸르를수록 숲은 깊어지고 마음자리도 내밀한 혼자만의 그늘을 만들 것이다. 오월이 가까운 들녘은 맑은 수채화를 그리며 경계의 윤곽을 지운다. 꿈속에 그리던 무릉도원은 그저 이상일 뿐 영영 찾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나의 세월도 늙어가는 탓일까, 낙향할 고향도 없고 내 남은 세월이 무릉도원을 꿈꿀만하게 여유롭지도 않지만 비 그친 봄날의 산골마을의 풍경을 보니 저 곳에 마음을 두고 작은 텃밭을 가꾸고 싶다. 자연속에서 잠시나마  나도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이 사월엔 흙을 일구고 씨를 뿌리며 마음을 경작하고 싶다. 가난하나마 산안개로 얼굴을 씻는 맑은 산을 마주하며 오월의 숲을 그리워 하고 싶다. 무릉도원! 그 곳은 영원한 그리움의 고향일지도 모른다.

 

 

2007.4.22일.   먼    숲

 

 

 

 

 

 

  

 

 

(사진 : 카페  "나누는 기쁨 실천회" 은빛물결님 )  

올려진 사진의 고향은 청도인 듯 합니다. 더 많은 사진을 보실 분은 아래 주소를 클릭해 보세요

 

  http://cafe254.daum.net/_c21_/home?grpid=15Y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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