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기침하셨는지요 산안개가 산허릴 몰고가는 새벽입니다 시절은 초여름이라 지천으로 핀 개망초가 백골의 언덕처럼 순백으로 하얗습니다 지금은 하늘 어디 별을 여행하고 계신가요 떠나신지 하도 오래되어 이승의 인연까지 잊으신 건 아닌지요 어렸던 저야 애저녘 아버질 기억 못한다지만 남겨 둔 식솔들을 까무룩 잊으신 건 아니겠지요 세월은 유수같아 막둥이인 제가 애비가 되었고 아버질 기억할 수 있는 유품은 박물관에나 가야 추억할 수 있으니 한 생이 허허롭기도 하고 화살처럼 날아간 시간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행여 아버님 영혼이 바람처럼 이승을 찾으신다 하여도 흔적조차 없는 고향을 어찌 찾을 수 있겠습니까 사는 게 너무 많이 변해 숨막히고 어지럼증이 나는 세상입니다 그러다 보니 요샌 쉼없이 허덕이기만 하고 살수록 채워지지 않는 욕심에 늘 배고프고 허기를 느낍니다 아직 홀로 남아 있는 목숨은 외로워지고 병들고 버림받을까봐 꿈꾸듯 떠나는 먼 여행을 마음속으로 소망하기도 한답니다 저야 그럭저럭 잘 살고 있지만 나이가 들어감인지 실없는 근심걱정을 놓지 못하고 살면서 가끔은 지나 온 길을 돌아보면서 후회도 하지요 사는 게 별거 아니였는 데 괜한 헛 욕심에 아등바등했나 봅니다 참 우수운 건 가슴 아프고 힘들었던 어린날의 고향이 그리운 건 왜인지요 세상 참 편하고 부러울 게 없다는 요즘인데 자꾸 불편하고 가난했던 옛날이 생각납니다 다시 신석기 시대쯤으로 돌아가 농경사회를 이루고 씨족끼리 이웃하고 오붓하게 정을 나누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꼭 그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 가지 않아도 허구헌날 싸우고 속이며 대립하지 않는 거짓없이 오염되지 않은 믿음있는 세상이면 족하겠습니다 병들어가는 지구상에 어디 그런 지상낙원이 있겠습니까만 그저 아버지 살아 생전의 소박한 시대만 해도 좋을 듯 합니다 아버지 소몰고 논갈이 하고 어머니 씨 뿌려 김매기 하던 시절 그렇게 가난하게 땀 흘려 일하고 돌아가는 자연이면 좋겠습니다 창을 열면 바깥은 짙푸른 녹음으로 깊어가는 여름인데 얼굴 윤곽조차 기억 못하는 아버질 불러내어 흑백사진 같은 풍경을 그리워하며 옛 시간을 회상하니 사는 게 꽤나 쓸쓸하고 권태로운가 봅니다 아버지! 유월 한나절에 흰구름이 저리 높으니 동구밖 느티나무 그늘이 아주 시원할 것 같습니다. 평상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다 달콤한 오수에 들어 꿈속에서 잃어버린 고향이나 찾으렵니다 혹여 구름타고 지나가시다가 평상에 누운 절 보시거든 시원한 바람 한 점 머리맡에 놓고 가십시요
2007.6.15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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