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를 끼고 도는 해안도로는 남빛 바닷물이 찰랑찰랑 버스 차창에까지 반짝이며 차 오른다. 남쪽의 봄은 그렇게 먼 바다를 건너오고 있었다. 물비린내도 나지 않는 바닷가를 따라 시내 외곽을 벗어나니 낮은 산줄기가 바다를 향해 내달으면서 나즈막한 평지를 이루고 꼬불꼬불 해안선을 그린다. 바다와 육지를 구분하는 해안선의 정겨움을 바라보는 데 해송으로 이어진 동산에 낯선 풍경이 들어온다 아직 겨울끝이라 푸른 침엽수림만 남은 산자락마다 푸른 비닐이나 허연 비닐로 움집처럼 덮어 놓은 더미들이 솔숲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다. 멀리서 보면 오래 전 IMF 이후 공원에 줄지어 있던 노숙자들의 거처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보니 비닐속에는 잘려진 나무들이 쌓여 있는 것 같아 산림청에서 간벌을 한 후 차곡차곡 쌓아 놓았거나 버섯재배를 위한 나무를 쌓아 놓은 것 같아 이 지역은 산림청이 일을 참 잘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궁금증을 풀지 못해 돌아 오는 길에 택시기사에게 산속에 무덤처럼 쌓여 있는 게 무어냐고 물었더니 소나무재선충 때문에 죽어가는 나무를 배어 약품처리를 하고 비닐로 덮어 놓았다가 다 썩으면 거름으로 그 산에 뿌려준다고 했다. 결국 소나무의 전염병을 막기 위해 죽은 나무를 베어내고 다른 지역으로의 방출을 막기 위해 그 자리에 무덤을 만들어 준 격이 되었다. 전에도 소나무 재선충에 대한 피해를 듣긴 했어도 그다지 심각한지 몰랐다. 바닷물처럼 울울창창할 해송들이 시름시름 병이 들어 원형탈모증 같은 모습으로 베어지고 산빛조차 누렇게 병들어 가는 게 안스러운 느낌이다. 지금 숲이 아프다. 푸르고 아름다운 금강소나무로 산맥을 이루어야 할 백두대간이 해마다 산불이나 병충해로 병들고 훼손되어 가고 있으니 몇 십년 몇 백년을 자란 금수강산의 자원이 한 순간 황폐해져 가는 것 같다.우리나라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소나무가 점점 죽어가는 것은 우리의 푸른 정기를 잃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듬성듬성 잘려 나간 나무를 쌓아 논 저 풍경들을 보니 마치 오래 전 해안이나 섬에서 주검을 산 속에 움막처럼 덮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게 한 초분(草墳)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닐이 아닌 이엉으로 덮어 놓았다면 보기도 좋았을테지만 그랬다면 영락없는 사라진 초분의 풍습을 재현한 것 같았으리라. 비록 소나무의 수명이 다해 화목이나 목재도 못 되고 주검처럼 누워있지만 여기저기 누워있는 그 모습들이 마치 공동묘지같아 보는 마음이 씁쓸하다. 다른 나무들이 자라기 힘든 메마른 곳에서도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 한 때 사시사철 푸르른 잎을 지니며 송죽지절(松竹之節)의 기상을 자랑하던 소나무들이 허망히 초분에 묻혀 있지만 그 영혼과 뼈는 다시 살아 남아 이 땅의 남아있는 소나무의 자양분이 되어 청청하고 멋스러운 솔숲을 이루게 하였으면 하는 마음이다. 소나무가 경제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벌목되거나 외면당하는 요즘이지만 굴곡이 아름다운 우리의 산야에 소나무만큼 기품있고 멋스런 나무가 없는 것 같다. 애석하게 단명해 누워있는 나무의 초분앞에 세워진 저 무시무시한 경고문 대신 소나무의 묘지명을 다시 쓴다. 『 우리 조선의 금수강산을 푸르게 키운 많은 소나무들이 역병에 걸려 장수하던 명을 다하지 못하고 애달프게도 여기 묻히게 되었다. 그들의 푸르른 넋이 부디 다시 부활하여 송죽지절의 기상으로 영원히 우리의 백두대간을 푸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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