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겨울 호숫가에서 들리는 침묵의 소리

먼 숲 2007. 1. 31. 13:31

 

 

 

'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이 올 것 같은 흐린 날이 거듭되면
             우울이 허리께까지 차 올라 마음은
             하얗게 언 호숫가에서 얼음을 깨고 낚시대를 드리우고 

             버릴 것이 뭔지도 모른 채 얼음처럼 결빙된 마음은

             빙판처럼 내게 쏟아져 오는 빛을 반사시키고 있었습니다.
             건질 것이 뭔지도 모르고 매듭을 풀지 못한 마음의 건더길 꿰어
             빈 미늘을 동공(冬空)에 던지고
             정지된 찌를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십이월입니다


             멀리 황폐한 벌판의 찬바람이 불적마다
             추운 미루나무가 한기를 털듯 몸서리치고
             몸부림에 안개처럼 뽀얀 눈보라를 날리며 겨울은 진저릴 쳤습니다
             겨울나목의 잔가지가 우우 울면서 떨고 있는 호숫가는
             쩡쩡 얼음이 깨지는 메아리가 지진처럼 번져갔습니다
             그 아픈 소리에 놀라 돌아보면
             아득한 설원에 내 발자국만이 덩그렁한 채 고독처럼 찍혀있습니다


             찾아 올 이 없는 눈밭에 난 내 발자국이 외로워
             오늘도 내가 낸 발자국울 피해 그 옆에 나란히
             난 또 다른 떠나는 발자국울 내며 돌아 갈 것입니다
             결빙의 시간은 길고 정막의 골짜긴 깊은 겨울잠에 빠져
             겨울산도 호수도 움직임도 없이 묵상에 들어 있습니다
             바람이 흐르는 것처럼 겨울 호수의 내면은 흐름을 멈추지 않았을까요


             웅크린 내가 눈사람처럼 굳어

             가슴이 고독과 외로움으로 절절히 뜨겁게 흐르듯이

             저 잔잔한 침묵 속 호수의 심연도 따스할까요
             다만 이 겨울 가슴속을 흐르는 은린의 물고기들을 보듬느라
             그렇게 두꺼운 결빙의 찬 갑옷을 입고 누워있는 것일까요
             저 나목의 두꺼워진 수피처럼 
             흐림이 느린 맥박의 혈관을 감싸고 있는 것일까요


             겨울 호숫가에서 들리는 침묵의 소리는

             외로운 영혼의 소리일지도 모릅니다
             가지가 찢겨지도록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설해목의 아픈 소리
             한기가 더해지는 저녁이면 몸을 뒤트는 빙판의 울음소리
             몰아친 바람을 감당치 못하고 몸서리치는 겨울바람 소리들이
             미세한 감각의 미늘에 걸려 내 목젖에서 울컥이는 푸른시절은
             지금도 작은 상처에도 튀어 오르는 LP판의 잡음으로 맴돌이 합니다


             긴 겨울밤 마음의 문풍지를 지난 시린 바람소리가
             울울한 내 전나무 숲의 오솔길을 지날적마다
             설화처럼 핀 추억은 하얗게 눈을 털며 아픈 기지개를 폅니다
             죽은 듯 잊었던 동굴 속 침묵의 소리가 바람소리로 전해질 적마다
             겨울나그네는 폭설의 눈밭을 설피를 신고

             외론 발자국을 내며 눈부신 은사시나무 숲으로 사라집니다
             푸른 달빛의 눈밭을 걸어가다 제 그림자에 놀라는
             발 시린 노루의 울음소리가 먼 기억을 설칠 적마다
             새벽은 놀란 노루의 머루빛 눈망울로 깨어납니다
             아직 먼 해빙의 기다림 앞에서.


             2001.12.10 일. 먼     숲.

 

 

 

 

 

 

 


황야의 무법자  (0) 2007.04.18
초 분 (草墳)  (0) 2007.03.23
『사막』 그 황량함의 한 가운데서  (0) 2007.01.29
시행착오 속에 깨닫는 아이 교육  (0) 2007.01.29
밤에 쓴 인생론  (0) 2007.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