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을 향한 창문이 눈부신 빛으로 환합니다.
한 때는 통유리로 비쳐드는 빛살의 기우는 각도만으로도 하루가 기울어 가는 스러짐의 눈빛으로 오후의 마음이 황금빛 햇살로 물들었었지요.
이젠 하루를 쪼개어 부채살처럼 펴 보려 해도 처음과 끝이 마주볼 뿐 분할된 틈 새의 그림이 없습니다. 갑갑하다고 속으로 말하곤 아무런 투정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웠던 것도 그 사이 더듬더듬 멀어지고 오랜만에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둔탁하고 자꾸 멈추고 맙니다. 내 안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요?
그는 어디서 길도 없는 눈밭을 혼자 외로운 길을 내고 있을까요? 그 발자욱이 노루발자욱처럼 또박또박 각인된 도장처럼 새겨져 보입니다.
그리워도 그립다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아프지 않습니다.
2002.1.25일. 추억의 오솔길.

햇살이 따사로운 오후 네시 좁은 거실에 웅크리고 있음이 답답합니다. 속이 메스껍고 더부룩해 트림조차 할 수 없는 무거움에
아내와 바람을 따라 나섭니다.
비껴가는 오후의 햇살은 시계방향의 아홉시쯤에 온 것 같았습니다. 공원 빈 운동장에 가득 퍼지는 결 고운 빛은 마른 땅의 축축한 기운을 드러내게 합니다.
이 찬바람의 파고듬은 신선한 회를 뜨는 칼날처럼 번득입니다. 그렇게 봄 빛은 양지녘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지금 들녘을 나선다면 푹푹 꺼져가는 서릿발을 볼 수 있겠지요.
내일모레가 이월의 첫 날입니다. 푸른날 이월의 해빙기는 저를 깨우는 새벽이였지요.
이르게 찾아 온 봄의 기별에 몸살을 앓느라 서릿발을 뚫고 어딘가로 더듬이처럼 내 안의 싹을 내밀고 언 발로 맨 땅을 디디며 흙냄새를 맡았습니다.
삼월이 오기전에 난 신발 가득 해빙으로 질척이는 생명의 흙을 묻혀서 시뻘건 황토흙이 짓이겨진 무거운 신발을 끌고 어디론가 헤메며 녹녹해진 마음으로 봄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월이 내일입니다. 이젠 그 시작을 위해 토시를 준비하고 옥죄던 넥타이를 영원히 풀어 버립니다. 가끔 그 허울이 흰 와이셔츠카라처럼 산뜻했음을 기억합니다.
냉이를 캐는 아낙이 남녘의 오후를 지나겠지요. 바라보고 스치는 모든 생각과 내 안과 주위로 일어나는 비누거품같은 생각들이 어느것 하나 은유할 수 없이 순간순간의 필름으로 사라진다는 것에 삶은 얼마나 사람을 건조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그나마 직유법으로 바라볼 수 있는 순간마져 한걸음 한걸음 옮길적마다 잊혀져 버립니다. 건방지게도 난 식상할 수 있는 하루하루를 대단한 의미부여를 하려 했나 봅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맥없이 글쓰기에서 멀어지는 지금의 간격이 견딜수 없다고 소리없는 몸부림을 하고 있나 봅니다. 그것은 지금 내 중심이 뭉개져 비어있는 공황상태임을 암시함을 저는 압니다.
이럴 때가 생의 주기처럼 평탄치 않게 숨찬 고개로 닥쳐옴이 예전에도 있었건만 이젠 게을러지고 약해진 나이라는 줄타기에서 그 흔들림을 민감하게 느끼나 봅니다. 이렇게 사는 모습이 가장 적나라한 것일진대 그동안 많이 위장하고 태연한 척 하지 않았나 생각되는군요.
지금 전 제가 가야 할 괘도를 진입하지 못하고 자꾸 뒷전에서 밍기적이고 있는가 봅니다. 제대로 눈길 한번 밟지 못하고 겨울은 가고 내 마음의 은유는 얼어 있지만 봄이 오는 소리는 한겨울에도 잠자지 않고 맥박처럼 흐르고 있었겠지요.
해빙.
이 언어의 행간으로 마음의 갈피를 녹여봅니다.
2002.1.28일. 추억의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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