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을 맞아 동서들과 처가식구들이 모여 광화문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다 평소 다니던 극장이 그 곳에 있어 모두 헤어진 뒤 아이들도 들여 보내고 아내에게 영화를 보자고 했다 어쩌다 보는 영화는 남들과 취향이 달라선지 나는 거의 이 영화관에서 보게 된다 이상하게 만화같고 오락적인 헐리우드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다 보니 요즘엔 보고 싶은 영화도 없는데 이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재미를 떠나서 가끔 바람 쏘이고 싶을 때 호젓하게 들러보곤 한다 근래엔 한두 편 보고싶은 영화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 "사랑을 카피하다" 였다 그리스의 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와 중국의 장예모 감독이후 좋아하는 감독이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다 그래선가 오래전에 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와 "체리향기"는 아직도 다시 보고픈 영화다 이란이라는 낯선 배경도 있지만 그의 미학적인 영상과 단순하고 리얼한 스토리는 감동적인 단편을 읽는 것처럼 새롭고 특별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이란을 벗어나 유럽에서 그것도 줄리엣 비노쉬와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흥미로웠다 더구나 작년 칸 영화제에서 기대했던 영화 "詩"의 윤정희를 제치고 줄리엣 비노쉬는 이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그런 이유로 보고싶기도 했지만 프라하의 봄, 퐁네프의 연인, 잉글리쉬 페이션트등 나는 오래전부터 그녀의 팬이기도 하다
영화가 시작되었는데 모처럼 배부르게 먹은 점심후라선지 춘곤증처럼 잠이 쏟아진다 그냥 편하게 자고 싶은 걸 참으며 이삼십분을 비몽사몽 잠결에 영화를 보느라 혼났다 어쩌면 약간은 졸음이 쏟아질만큼 좀은 지루하거나 밋밋하고 사설적인게 많은 게 불란서 영화이니 이런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처럼 재미도 없는 경우가 많아 남에게 권하기도 그렇고 대체로 혼자 보는 경우가 편하다 졸면서 꿈결에 본 듯이 단순한 이 영화의 스토리가 어디가 진실이고 허구인지 혼란스럽다 나중 인터넷상의 리뷰를 보니 그 영화의 실체들이 이해되고 느낌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중년의 남녀가 하룻동안 이탈리아의 古都 토스카니를 여행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로드 무비라 정말 단순하다 올드한 거리를 거닐며 결혼한 지 십오년이 지난 중년의 남녀가 이제 잊혀져 가는 추억들 결혼과 함께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오래된 거리를 따라 되돌아보는 하루의 소소한 일상이 마치 요즘 뜨고 있는 개그콘서트의 "생활의 발견"이란 코너처럼 평이한 리얼이 영화속에 녹아든다 서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오늘 이 도시에서 결혼한 신혼의 한 쌍을 만난 후 자신들의 모습을 반추하며 오래전 결혼한 허구의 부부가 되어 그동안에 잃어버린 자신들을 찾아 보는 로맨스 영화인데 두 사람의 연기 호흡과 감독의 섬세한 감정 연출인지 처음 만난 그들의 관계가 부부처럼 착각되어지는 과정에서 나는 졸음처럼 혼란에 빠지고 "저 사람들 부부 아니잖아" 하는 바보스런 말을 내뱉는다
늦은 결혼이라 남과 비교할 때 아이들이 어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나도 벌써 이십년이 가까와 온다 아직은 영화처럼 내 생을 되돌아 볼 여유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목표와 가중되는 책임으로 힘겨워지는 나이다 결혼이 인생에서 정의되는 의미를 쉽게 단정지울 수는 없지만 결혼이야말로 인생의 전부라 할만큼 우리 생에서 새로운 출발과 끝인 것 같으니 결혼 후의 세상은 또 다른 나의 역사일것이다 서로 자신을 허물어가며 가정이라는 공통된 세상을 꾸려가느라 우리가 잃어버렸던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러나 잃어버린것보단 많은 것을 새로이 창출하며 지켜가는 생산적 삶이 아니었을까 실없이 사족이 길어졌지만 결혼은 인간이 지금껏 반복하며 진화해 온 인생의 역사적 삶의 카피일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지만 내 생이 더 깊이 저물면 영화속처럼 그동안의 삶을 추억하는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세월이 많이 흘러 꽃같은 시절의 모습를 잃어버렸다 해도 사랑에 대한 소소한 감정마져 잊고싶지 않아 첫 만남의 날짜와 장소, 결혼 첫날의 호텔과 방 번호, 그날의 날씨와 창밖의 풍경, 대기의 공기까지 기억하는 여자와 피곤한 현실속에서 점점 그런 사소한 감정을 망각하거나 귀찮아해하는 남자들의 짜증이 영화속에서 리얼하게 이야기 된다 결혼이라는 만남으로 살아온 세월속에서 사랑은 얼마큼이 거짓이고 진실인지 진부하게 가릴 필요없이 둥글어가는 지금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사랑이 변한 것 없는 듯이 생각하지만 현실은 사랑과 무관하게 늙고 시들어 간다 그 보이지 않는 간극에서 서로 외로워하고 쓸쓸해지기도 하며 가끔은 안스런 연민으로 서로에게 미안해져가는 세월이다 장미처럼 향기롭고 아름답던 줄리엣 비노쉬도 중년의 모습으로 변하고 나는 참 볼품없이 망가져 간다 그래도 마음은 항상 영화속의 한 장면처럼 조금은 느리고 여유로운 낭만적인 로맨스를 꿈꾼다 돌아 올 수 없는 세월을 그리워하는 아련함이 오월의 녹음속에서 산그늘처럼 번져간다
2011년 5월 13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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