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게 없다는 생각은 언제 어디서부터였을까, 단순하게 유행가 가사처럼 빈털털이의 호주머니를 의식하고부터는 아닐까 가끔씩 집처럼 내게 붙어 존재하는 호주머니에 담겨지는 쓸쓸한 바람이나 허전한 노을이 무소유의 자리처럼 느껴진다 두 손을 깊이 찔러넣거나 작은 문고판 같은 책을 넣을 수 있는 빈 호주머니가 주렁주렁하고 헐렁한 옷이 좋았다 그러고 보니 젊은날은 욕심만 빈 가슴에 누덕누덕 달고 다닌 셈이였다
그렇게 홀로 걸으며 해결할 수 없이 무거운 고민을 안고 살면서 내가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 호주머니속이였다 내 비밀스런 이야기나 혼자만의 숨겨둔 생각을 손금보듯 볼 수도 있었다
여행에서 아오는 게 허전한 날은 주머니 속에 여행지에서 주운 조약돌이나 작은 낙엽, 열매가 있기도 하고 때론 마른 들꽃 송이에서 전해오는 꽃향기가 있기도 했다 그리운 벗이 사는 제부도를 다녀올적엔 소금기 배인 조가비나 소라껍질이 있기도 하지만 주머니속 가득 파도 소리가 출렁이기도 했다
허전할 때 주머니 속의 호두알을 윤기나게 비비적대듯 가끔은 혼자 속앓이처럼 끓어 오르는 울분을 삭이려고 몰래 호주머니 속에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펴는 동안 주머니속의 동요도 어느덧 평화로워져 따스한 온기가 돌곤 했다
허구헌날 잡히는 것 없는 빈 세월을 잡으려고 손주먹 쥐며 내 안을 들락거리는 헛손질에 겨워 낡아진 주머니의 문은 돌쩌귀가 닳아 휭하니 열려져 있었고 어언 사십이 저물자 손 때 찌든 문 틈으로는 찬 바람만 지나간다 살면서 주머니 두둑한 날 없이 늘 빈 손으로 길을 가지만 이제는 아내와 길을 같이 가다 슬몃 내 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두 손 꼭 잡아 말없이 힘과 온기를 전해주니 빈 주머니 속이 행복의 보금자리일 수 도 있음을 안다 말없는 감정의 흐름들이 내밀한 호주머니속에서 내 자신과의 소통을 나누며 둥글어진 마음을 담는다
2001.6.15일. 추억의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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