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새 운 풀벌레 울음소리가 이슬이 되었을까 풀먹인 듯한 빳빳한 아침 길섶이 축축합니다 아직 울음을 그치지 못한 풀벌레 소리가 그렁그렁한 맑은 이슬을 뚝뚝 떨구며 젖은 풀섶에 숨어 처연히 울고 있습니다 부뚜막이나 섬돌, 풀섶같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석으로 풀벌레 소리가 명징하게 들려 오는 가을이면 왜그런지 외로운 솔로가 되곤 합니다 굳이 해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모르스 부호같은 가을의 소리들이 그리움이란 투명한 언어로 타전되며
아련한 울림이 되고 서걱거리는 바람이 되어 가을의 쓸쓸한 행간을 읽고 갑니다
혼자 들길을 걸어 본 적이 있으신지요 소금밭처럼 새하얀 메밀꽃이 핀 너른 밭고랑이나 김장배추가 꽃포기처럼 자라는 긴 배추밭길이나 벼이삭이 황금빛으로 누렇게 익어가는 논두렁 길을 걸어 보셨나요 메뚜기가 내 발자욱에 놀라 팝콘 튀듯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짙어진 풀냄새가 이랑마다 물결치는 가을길에 서면 가슴으로 꽉 차오르는 달콤한 포만감에 젖기도 합니다 무언지 모를 그리웁고 따스한 감정들이 잔잔한 조수처럼 밀려와 마음의 기슭을 적셔줍니다 그렇게 천천히 들길을 벗어나 싸리꽃 핀 산자락에 서면 저 산 너머로 사라진 추억들이 가을꽃처럼 수줍게 피어납니다
억새꽃이 피어나는 가을숲에 들어 가만히 귀 귀울이면 풀벌레처럼 숨어 우는 소리들이 들리기도 하고 홀로 노래하는 쓸쓸함이 내 마음의 울림통을 흔들어 길을 걸으며 나즈막하게 공명의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가을이 영글어 가는 벌판에서 전해저 오는 내 안의 맑은 소리들 그 청명한 마음의 전언을 명확히 설명치 못하지만 그냥 힘내어 다시 일어나라는 따스한 마음 같았습니다 다시 내년에 이 풍요로운 가을의 들녘에 서 보라는 것 같았습니다 잃어버린 것 보다, 내게 남은 것, 내가 가진 것을 보라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보단 존재하는 날 바라보라는 것 같았습니다
2009.9.14 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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