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초가을의 인사

먼 숲 2009. 9. 2. 12:01

  

 

 
 

'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문 <詩가 있는 아침>에 『序歌』라는 시를 소개하면서

이경철 평론가는 가을을 " 일궈 여문 것 많아도 쭉정이 진 나날 같고

햇살 쨍한 푸르름에도 눈물 나는 계절, 외로워서 서럽고 그리운

 우리네 삶의 맨얼굴 같은 가을이다"라고 썼다

 

- 우리네 삶의 맨 얼굴 같은 가을

이 투명하고 촉촉한 표현이 참 좋아 가을 하늘을 보면서

시들어진 내 모습을 호수같은 하늘에 비춰보곤 한다

가을이 오면 작년 겨울부터 봄, 여름을 지나

지금까지의 한해살이가 맨얼굴처럼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아

스스로의 모습을 마무리하고픈 내면의 상념에 빠져드는 것 같다

거둬들이는 결실을 가늠하진 않더라도 한번쯤 반추해보고 싶은 가을

그래서일까, 어느때보다 마음이 공허해지기도 하고 쓸쓸하다

 

며칠새로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부터

창공은 드넓은 수평선을 그으며 깊어져 가고

 손 안에 잡힐듯 가까와진 북한산은 실맥까지 보일 것 같다

밝고 환한 바깥픙경이 수채화처럼 청명하고 가벼워져

갑자기 높다란 하늘로 풍선처럼 둥실 떠 오를 것 같아

내다보는 시선의 각도를 한층 발돔음 해 보며

참 공기가 맑다는 평범한 수식어를 오랜만에 써 본다

 

해맑은 날씨 탓일까, 비록 밥벌이에 쉴 사이 없이

밤늦도록 일터를 오가는 고단한 일상이지만

마음은 창공처럼 푸르고 흰구름처럼 가벼워지고 싶다

이젠 내가 보기에도 남루해 보이는 자화상이지만

이 가을볕에 말갛게 헹구고 주름진 얼굴로 웃어 보고 싶다

아직 꽃빛 고운 여름꽃이 한창이고 잠자리떼의 비행이 자유롭다

초가을로 가는 들녘은 서서히 녹빛을 잃어가고 그늘이 짙다

먼 산을 쳐다보다가 슬몃 회상의 날개를 펴며

잊혀져 가는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리는데

그 모습들이 흐릿하니 가시거리가 아득하기만 하다

 

엊그제 오전 열시가 지나는 해밝은 시간

뜬금없이 아내가 손전화를 한다

그냥이라지만 그 안에 내포된 마음이 말없어도 환하게 보인다

그러나 좀체로 스스로도 틈을 낼 수 없어

모르는 척 비껴가는 내 마음도 허한 등이 보인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푸르른 날엔

그립고 보고싶다는 쓸쓸한 마음을 숨긴 채

 누군가에게 맨얼굴로 바람같은 안부를 물을 것이다

골목을 스치는 바람처럼 어딘가를 배회하다가

파란 하늘이 내다 보이는 작은 찻집에 앉아

마냥 거리를 내다보고 싶어할 것이다

 

이 가을은 어느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나만의 평형을 이루고 싶다

 

차 한 잔 하실까요 ?

 

 

 

2009 9 월 5 일    먼    숲

 

 

 

 

 

 

                                                                                                 <사진: 김선규 기자의 빛으로 그린 세상에서>

 

 

  

 

 

안개속을 걸어 오며  (0) 2009.11.26
내 안의 가을소리  (0) 2009.09.07
힐링가든  (0) 2009.08.26
비오는 날의 저녁길  (0) 2009.06.20
오월의 산책  (0) 2009.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