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안개속을 걸어 오며

먼 숲 2009. 11. 26. 14:18
 
 
 

 

 

 

 

 

 

 

 

 

 

안개속을 걸어 오며


  

여직 나를 감추고 살만큼 살아온 길이 부끄럽지 않았거늘
어제 당신과 걸었던 안개속에 가려진 세상과 길이 어찌 그리 편한지 모르오
언제부터인가 나도 인생 사는게 비록 안개속일망정
환상같은 몽롱한 꿈과 멀어져 각박한 현실속을 헤쳐가고 있으니
이젠 안개속에서 길을 잃을 일은 없는가 보오
어느덧 가족을 이루고 살아 온 길지 않은 행복한 날들이
불확실한 삶의 길에 가려져 있던 떠돌던 안개를 거두고
명확한 이정표를 만들며 가야 할 길을 내 주었나 봅니다


오히려 우리와 부대끼던 그 모든 주위의 관계들이
안개에 함몰된 공간처럼 지척을 분간할 수 없던 어둔 길에서
힘이 되고 빛이 되어 더듬거리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등불이 되었나봅니다
부부란 이름으로 서로 보폭을 맞추며 둘이 걸어가는 동안
젊은 날 혼자 외롭게 떠돌던 방랑도 어느새 안정되고
방황으로 에돌던 세월을 건너 희망과 소망의 시간으로 채워가고 있습니다

사는 게 늘 안개 속 같아 떠도는 부유물처럼 뿌리내리지 못했던 내 삶의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고 욕심 없이 살아 준 당신으로 인해 내 삶의 어둔 안개들이
어느새 비단결처럼 안온하고 포근한 둥지의 깃털이 되었음은
현명한 당신의 몫이고 그런 평온함을 유지해 준 당신의 보람이겠지요

 

보이지 않게 내 무게로도 벅차 늘 예민해 하는 나를 지켜봐 주고
큰 위로가 되어 주는 당신에게 우리의 미래는 밝은 햇살에 안개가 벗어지듯
행복하고 희망찬 새로운 광명의 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욕심을 낸다고 그리 욕심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님을 알고
안분지족하는 삶으로 꾸려가는 당신과 우리의 모습은 결코
안개속이 아니더라도 부끄럽지 않고 가리울 것 없는 생활일겁니다

사는 건 안개속을 벗어나 적나라한 알몸으로 부딪치며 사는 관계이거늘
아직도 몽환같은 안개속을 그리워한다면 내 삶의 낯갈이가 심한 것이겠지만
어쩌면 그 낯갈이는 그러한 세상에 대한 노출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현실을 분간할 수 없게 현란하고 눈부신 과욕의 불빛에 대한 반감이겠지요

 

전조등 없이도 더듬더듬 안개 속을 나올 수 있는데
우린 언제부터인가 삶의 지혜를 볼 수 없게 과욕으로 길 눈이 어두워
강한 서치라이트에도 길을 잃고 있었지요
하지만 이젠 가로등조차 없는 길이지라도
앞이 아득한 이 깊은 농무가 두렵지 않음을
어제 그 안개속의 길을 걸으며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직 사슴처럼 맑은 눈의 아이들의 눈빛이
세상을 비추는 가장 밝은 촉수의 불빛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항상 올곧게 자라며 부모보다 더 사랑스럽게 정을 나누는 두 아이가
이런 행복을 가져다 주는 근본이고 혜안의 척도이기에
바르고 심성 고운 아이들에게 부끄럽지않고 자랑스럽게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베푸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란 걸 압니다

 

그렇게 아이들을 맑고 향기로운 꽃처럼 키워 준 당신에게
다시 한번 고맙게 생각하고 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그 축하는 항상 우리 삶의 출발선에 선 연륜의 나이에 대한 기쁨입니다
내일은 아침을 볼 수 없게 밀어 온 짙은 안개가 걷히고
늦가을의 밝은 햇살이 우리집 창을 더 환하게 비출겁니다

늦은 여정의 동반자로서 세상 눈에 어둔 부족한 내가
요즘 들어 아침이 버거운 당신에게 새로운 빛이 되길 바라며
파랑새처럼 어여쁜 우리의 아이들도 늘 건강하길 기원합니다
늘 안개속에서도 행복하기 바라오

 

 

2001.11.23일. 당신의 생일을 축하하며


 


                        

 


 

 

 

 ■  오래된 글을 정리하다가 새로운 마음으로 이 글을 읽어 본다

      올해는 윤달이 있어선지 늦어져 엊그제가 아내의 생일이였다

      겨우 네 식구인데도 한 자리에 모이기 쉽지 않아 미리 조촐하게 생일 축하를 하였지만

      갈수록 맞이하는 생일이 허전하고 흐르는 세월이 두렵다

      갱년기를 맞는 우리 부부는 작년부터 쌓인 심신의 피로로 많이 힘들었다

      모두가 휴식할 시간없이 바쁘게 매여 살다보니 조금씩 피곤이 누적되기도 하였지만

      그보다 같이 대화하며 서로를 돌아 볼 여유없이 살다보니

      무관심하지 않으면서도 속으론 미움이 쌓일만큼 벽이 생기는 것 같았다

      부부간에도 사소한 것, 늘 그렇지만 그렇게 소소한 감정들을 풀지 못하고 쌓아가면서

      서로 기대며 보듬어 주어야 할 마음들이 소원해지면서  각을 세우며 외로워져 가고 있었다

 

      모두 남남이 만나 부부가 되어 가정을 이루고 살지만 얇은 마음 한 장이 벽을 세우면

      어느날 서로 남남처럼 등을 보이는 것 같아 참 쉽게 위태로워 지는 것 같았다

      어느덧 서로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는 외로움에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소통되지 않는 사이엔 오랫동안 같이 산 세월마져 물거품처럼 꺼져 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

      그런 허망한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 참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한다는 게 어렵다는 걸 느꼈다

      아무리 값지고 귀중한 그릇이라도 작은 상처가 나고 금이 가면 쉬이 깨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모든 사람의 인연이 그렇지만 부부라는 인연도 그렇게 조심스런 그릇같아서

      마음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그 안에서 삭혀지는 세월과 사랑도 달라질 것 같다

      이 글을 다시 읽으며 남은 세월은 그저 단단하고 투박한 질그릇처럼 둥글어져서

     오래도록 손때 묻은 골동품이 되어 내 아이들이 물려 받았으면 하는 소망이다

     늦게나마 아내에게 살면서 미안한 마음 전하고 새해엔 건강했으면 하는 바램을 해본다

 

 

       2009.11. 27 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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