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봄을 부르다

먼 숲 2010. 2. 19.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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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수가 지나자 언 땅이 발그레하게 상기된 볼을 한 아이들처럼 촉촉해진다

늘 지나치는 놀이터쪽 산수유 꽃망울의 눈두덩이 샐쭉 부풀어 올랐다

눈을 뜨려는 봄의 움직임은 언제나 설레임이라는 분홍빛 기운을 내포한 듯 두근거린다

두꺼운 파카를 벗고 출근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월요일 아침, 살짝 봄비가 내린다

해마다 이월이면 겪던 봄의 울렁거림과 떠나고 싶은 열망이 예전처럼 심하게 도지진 않았지만

속마음은 여전히 초록의 마늘밭이 일렁이는 남쪽 바다를 을 향해 열려 있다

어찌하여 되풀이되는 삶의 일상은 지루한 반면 반복되는 계절은 새롭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나이 한 살 더 먹는 덧없음을 모르는 척 눈감고서 새해엔 일상에 잘 적응해지길 바랬는데

해가 바뀌어도 일에 대한 적응은 여전히 형광등처럼 껌벅이고 잦은 실수로 스트레스만 쌓인다

나이들수록  현실에서 도피하고픈 생각의 싹은 두꺼운 마음벽을 뚫고 나오고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 하면서도 현실은 이게 아닌데 하는 불행감을 느끼고 있으니

 어찌 사는 인생이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것인지 생을 돌아볼수록 자주 우울해진다

이제사 부귀영화를 바라는 욕심도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살수록 버겁고 무겁게 느껴지는 삶의 무게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점점 집중력은 떨어지고 나약해지면서 의욕을 낼만큼 자신감도 없으니 이게 나이먹는 걸까

어느새 망가지는 몸매만큼이나 마음의 모습도 일그러지고 평화롭지 못하다

사는 게 다 그러하다고 체념하고 덧없어 하는 나이에

이런 식상한 속내를 털어놓은들 오히려 궁상스러워 보일 것 같다

내 삶의 은유는 시들어 가고 누추해진 상념은 죽어가고 있다

 

오후들어 처마에 드는 양광이 밝고 가볍다

어쩌겠는가, 어느새 내 생의 봄날은 갔다 해도

오는 봄속에서 나도 무거운 외피를 벗고 가벼워지자

머지않아 번져 올 꽃소식도 잠시 웃고 가는 순간에 불과하다

지금 내 인생은 서러워하거나 후회할만큼 불행한것도 아니다

다만 내 젊음의 날들이 음지에서 환하게 꽃 피우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울뿐이다

지금 휴식의 날들을 생각할 겨를없이 노곤하게 사느라 지쳐가지만 그래도 현역아닌가

겨울은 길고 어두운 동굴속에서 외롭고 고독했다

잠시 원시의 숲에 들어 하늘을 나는 새처럼 봄을 노래하자

먼 로키산맥의 골짜기에 겨울설산이 빙하로 녹아내리면 사랑을 노래하는 인디언처럼

청명한 물소리로 전해오는 파릇한 봄의 메아리를 불러보자

잠 깨어 움트고 꽃 피는 봄의 설레임에 기대어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보자

동면하던 내 안의 산들이 깨어나고 잠자던 그리움이 깨어날 것이다

봄꽃처럼 아름답고 슬픈 사랑의 전설이 녹아 흐르는 낭만이라도 해도 좋다

굽이쳐 흐르는 빙하에 얼굴을 씻고 손을 담그면 영혼조차 맑아지리라

우리가 바라고 그리워하는 것이 꿈이거나 먼 기억의 골짜기에서

만년설처럼 잠들어 있다 해도 봄이면 새잎으로 돋아나고 꽃으로 필것이다

마음길이나마 숨가쁜 현실에서 벗어나 빙하의 골짜기에 들어 자연이 되고 싶다

내 마음의 강가에 뽀얀 버들개지가 피고 겨울잠에서 깬 물고기가 노닌다

봄쑥향기 그윽한 삼월의 메아리가 가깝다

 

 

2010년 2월 23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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