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詩 그리고 에필로그

먼 숲 2010. 5. 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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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스의 노래   /    이 창 동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치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 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 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 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이 詩는 이창동 감독이 직접 썼다는 시로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맑고 순수한 소녀의 낭낭한 목소리로  강물처럼 흘러간다

詩라는 어려운 주제로 영화에서 어떻게 무엇을 말해주려는지 영화가 끝나기까지 종잡을 수 없었다

자막이 끝나고서도 마음속을 흘러가는 강물소리의 여운이 한참 이명처럼 들리고

시 속의 풍경이 되는 어느 작은 소읍의 거리를 지나 어둔 도시를 들어서서야 조금 알듯한 멧세지를 읽는다

설사 감독이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싶다해도 보는 사람, 느끼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지금 내가 느끼는 영화 "시"의 숨겨진 은유는 나만의 생각일 것이다

이창동 감독의 다른 영화들처럼 이 영화도 우리 삶의 주변보다 사회 비판적인 의미를

시라는 아주 어렵고 순수한 이름속에 숨겨 두고 찾아내려는 장치를 한 것 같다

 

시는 미자라는 할머니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만으로는 쓸 수 없는

모든 생명의 내면과 갈등, 아픔과 환희, 고통같은 것을 지나서 걸러지는 진주같은 것

하여 찾고자 하지 않고, 쓰고자 하지 않는 마음에선 볼 수 없는

어쩌면 많은 이들이 근접할 수 없는 소외와 외로움의 대상은 아닐까

지금 우리 세대의 메마르고 무감동한 모습에서 문학은 처절하게 유린당하고

돈이 우선인 현대사회에서 시는 휴지조각처럼, 쓰레기처럼 버려지거나 소외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러명의 철없는 아이들에게서 꽃같은 소녀가 겁탈을 당해 죽음에 이르고

그것도 학교에서, 같은 동창생끼리 일을 벌이고도 아무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은 채

불감증처럼 살아가는 아이들과 이를 돈으로 무마시키려는 어른들의 한심한 작태를

가장 예민하고 진실한 시라는 뇌관을 써서 고발하는 영화의 은유성에 감탄을 보낸다

 

시들어가는 세월의 나이를 감추듯 꽃무늬 옷에 스카프로 멋을 내는 철없어 보이는 미자라는 주인공

세상이 시처럼 순수하고 감상적일 것 같았는데 지금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손자가

이 사건의 한사람이라는 충격에 갈등하며 양심과 진실을 찾으려는 미자는

그 엄청난 사건을 보고 "왜 그랬어" "왜 그랬어" 하는 채근외엔 

영화속에선 그 깊고 아픈 미움과 절망을 너절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미자는 죽은 소녀의 사진을 손자가 보도록 식탁에 놓고 어떤 마음의 동요가 있을까 하고

멀리서 지켜 보지만 아이는 끝내 일말의 죄의식도 보이지 않고

다른 부모들도 오직 돈으로 입막음을 하고 아무일 없듯이 잊어버리려 한다

이렇게 철저히 양심이 짓밟힌 이 세상에서 시는 등불이 될 수 있었을까

 

이러한 추하고 더렵혀진 현실에서 결국 그 녀도 어쩔 수 없이 돈에 자신의 육신을 판다

어쩌면 그 모욕적인 체념이 오히려 자신에게 위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시는 아니러니하게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버리고  진흙속에서 피는 연꽃처럼

모든 오염속에서 자신의 생각들이 정화되었을 때 찾아 올 지도 모른다

녹녹치 않은 세상살이에서 시는 감상적인 감정의 부산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무어라 정의 내릴 수 없는 시의 모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그 답을 명쾌히 답해 주지 않지만 그러한 질문 자체가 우리 삶의 의미는 아닐까

 영화속에서 붉은 맨드라미 같은 소녀와 코스모스같은 소녀의 사진이 시의 상징은  아니였을까

생명을 가진 모든것처럼 우리 생의 한 모습도 시일텐데 양심을 잃어 버리고 시는 존재할까

이러한 마음의 일렁임이 영화의 에필로그로 남아 강물처럼 흘러간다

 

 

시는

굴절될 수 없는 빛이다

막을 수 없는 바람이고

거스를 수 없는 물의 흐름이다

살아 있는 공기이고

숨길 수 없는 마음이다

 

 하여 시는 외롭고 아프다

아름다움은 그 모든 감정의 상위에서 존재하고

시 또한 지구를 벗어 난 별처럼

홀로 빛을 잃지 않을 때

詩 라는 이름으로 빛난다

 

 

너무 거창한가?, 그러나 시는 그렇게 내 좁은 소견으로나마 과장하고 싶은 결정체다

 

 

 

2010년 5월 20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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