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준비를 하는 것들은 여위어갑니다 물오르던 몸과 질척거리던 감정의 흐름을 멈추고 조금씩 말라가는 건기의 아름다운 계절을 지나 가벼워지고 단단해지는 사이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합니다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은 살 비벼 울지 않습니다 앙상해진 쇄골 사이로 지나는 바람과 악수하며 서걱거리는 공명의 마른 소리로 노래하다 등 뒤로 흐르는 바람을 따라 어디론가 떠나갑니다
비에 젖어 눕거나 구름의 하중에 눌려 흔들리고 설레임에 고개 숙였던 날들을 지나 석양이 오면 나목처럼 꼿꼿하게 바람을 마주하며 이별을 고합니다 여위어가는 건 버릴 줄 아는 아름다움입니다 하여 외로워지는 것에 대해 칭얼거리지 않고 고독을 마주할 줄 아는 지혜로움으로 쇠락해갑니다
나도 이제 마른 갈대숲처럼 가벼워지고 싶습니다 젖은살 비벼 울지 않고 가벼워진 영혼으로 노래하고 싶습니다 내 마른 숲 사이에 노을빛 들면 곤히 겨울잠 자는 작은 새들의 보금자리를 내어 주고 싶습니다 화려했던 빛과 칼라의 시간은 가고 퇴락의 숲은 칙착해져갑니다 만물의 색은 그 원형질이 흙이 아니었나 싶게 흙빛을 닮아가는 갈색의 계절, 십일월이 깊었습니다 갈대숲에 이는 마른바람 소리가 서리내린 머리결을 스치고 갑니다 동면을 준비하지 못한 영혼은 바람처럼 서성이겠지요 겨울이 오는 길목에 서 있습니다
2009. 11월 17일 먼 숲
<사진작가 신미식의 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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