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윤 화백(1939-2006)은 한국 인상주의 회화의 대가였던 오지호 화백(1905-1982)의 차남으로 아버지의 대를 이어 한국 서양화단의 거장으로 성장했으나 작년 비극적인 자살로 그 생애를 마감했다. 1940년생인 오 화백의 미술입문은 고교 3학년이던 1959년, 전국학생실기대회에서 '소묘'로 최고상을 받았던 것이 계기가 돼 홍익대 미술대에 진학하게 된다. 이후 10년 넘게 거의 해마다 국전에 입선해 특선작을 냈으며 당시 추상미술이 유행처럼 밀려들어 한국 미술계를 휩쓸고 있을 때 한국의 자연이나 풍물을 구상화로 나타내는 데 힘쓰면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1970년 전남도 추천작가와 1975년 초대작가 등으로 선정돼 작품성을 알렸으며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추천,초대작가와 심사위원,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했다. 1974년에는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창설에 참여하면서 후진양성에 힘을 쏟으며 교수로도 재직했고 1980년에는 파리로 건너가 자신의 화풍을 세우는 데 골몰하게 된다.
국내보다 유럽에서 더욱 인정받고 있는 오 화백은 적(赤)은 남, 청(靑)은 동, 황(黃)은 중앙, 백(白)은 서, 흑(黑)은 북쪽을 뜻하는 한국의 전통색인 '오방정색(五方正色)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작품을 남겼다. 1990년대 들어서는 유럽 화단에서 활동하며 99년 6월 작품 '풍수(風水)'가 프랑스 유력 미술지인 '위니베르 데자르'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현대미술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개관기념 한국의 어제와 오늘전, 개인전 풍수 연작전, 유네스코 본부 초대전, 살롱 쿠드 쾨르전, 르 살롱전.사롱 도톤느, 뉴욕 아트 엑스포 등 한국과 프랑스 파리 등을 오가며 개인ㆍ단체전을 열었다.
■ 얼마 전 KBS에서 대표적 노화가인 김훈과 오승윤화백에 대한 사건을 추적 보도하는 걸 보았다. 요즘 최고의 투자가치를 위해 일부 미술품의 경매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천정부지의 값으로 팔려나간다는 뉴스도 들었지만 일부 화랑이 전속작가제로 계약을 해 계약된 화가들의 작품을 목숨갖고 놀듯 오직 돈에 눈이 어두워 악덕장사꾼으로 전락한 미술계의 이면을 보게 되었다. 세상 어디나 돈이 되는 곳엔 파리 꼬이듯 허접한 장사꾼이 진을 치는 게 다반사이지만 그림이란 순수 예술로만 보던 나로선 평생 그림에만 목숨을 건 병든 김훈화백의 고통과 오승윤화백의 자살이 충격적이였다. 하기사 동서양의 유명한 화가 거의 대부분이 그림을 그리며 가난과 예술을 향한 자신과의 고독한 투쟁속에서 불행했거나 외로웠다지만 이미 세계적으로 검증된 우리나라 대가들의 예술적인 작품을 사기꾼처럼 도둑질하는 작태를 보면서 돈 앞에선 예술도 무력하게 느껴졌다. 오직 세상물정 모른 채 그림에만 평생을 보내는 예술가의 영혼을 그리 참담하게 팔아 넘기려는 병들고 썩은 뒷거래가 한심스러웠고 이미 고인이 되신 오승윤 화백이나 지금 투병중인 김훈 화백의 고고한 명예를 늦게나마 다시 찾으셨으면 한다.
사설이 길었다. 저 담백하고 아름다운 그림만 보고도 오승윤 화백의 영혼이 얼마나 순수했을지 짐작이 간다. 숭고한 예술만을 고집하며 온 생을 영혼으로 그림을 그려내는 화가들에게 사기꾼같은 장사치에게 자신의 그림이 매도 당하니 그 얼마나 치욕스럽고 마음이 아팠으면 목숨을 내놓았을까. 결국 자신의 그림에 대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셨을 것이다. 오화백님의 그림을 보니 우리 한민족의 아름다운 색인 오방색으로 화려하면서도 천박하지 않게 고풍스런 색감과 조화로 우리가 살던 고향마을과 자연을 생동감있는 서정으로 표현해 마치 먼 신화속을 보는 듯 하다. 우리의 오랜 전통문화인 불교의 단청과 소박한 민화를 현대화하여 단순하면서도 질박한 한국의 미를 그려낸 거 같아 오화백의 그림에선 우리 할머니가 들려준 옛날이야기가 있고 캔버스 가득 우리의 유년을 꽃수를 놓듯 오방색으로 물들여 아련한 추억의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란 한 때 유행했던 말처럼 그의 그림에선 우리의 아득한 기억의 산과 들과 마을과 꽃들이 사람과 어울려 아름다운 색동의 이야길 알록달록한 색실처럼 풀어낸다.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영혼에 붉은 모란 한송일 바치고 싶다.
2007.6.20 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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