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끝의 여백

산과 나무와 나의 경계 / 장이규 화백의 그림

먼 숲 2007. 12. 14. 12:58

 

 

 

작가 장이규는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절하게 자연과의 거리를 조절하면서

때때로 주관이나 대상(자연)에 치우치기 쉬운 작가적 심성을 중용을 통해 다스린다

그의 풍경은 자연의 빛과 바람을 인간의 숨결과 맥박 속에 용해시킨다

그래서 그의 풍경 속에는 자연의 평온과 인간의 체온이 함께하는 따뜻한 서정성이 있다

그 서정성이 함께하는 그의 풍경은 자연에 대한 감각적 인상이나 또는

주관적 표현의 극단을 추구했던 서구 인상주의나 표현주의 회화와는 전혀 그 모습을 달리한다

청녹색이 주조를 이루는 그의 풍경은 마치 청록산수와도 같은

그 색조가 주는 평온, 안정의 느낌과 함께 수평적으로 폭넓게 전개된

풍경의 파노라마를 통해 자연을 보는 인간의 시야를 확장시킨다.  ■

 

김임수 (계명대 교수, 미학박사)

 

 

 


 

   

 

 

 

   

 

  

 

  

 

 

 

강원도 내륙지방인 정선, 영월이나 깊은 태백산맥의 골짜기를 따라 여행하다 보면 장이규 화백의 그림같은 풍경을 자주 대하게 된다.

그 때 길을 가다 마주하는 높은 산의 장벽은 외부와의 단절감과 산이 둘러싼 포위감에 휩싸여 갑자기 외롭거나 고독해지는 걸 느낀다.

나는 장이규 화백의 저 그림들을 보는 순간 그러한 고적감과 단절감에 외로운 소나무처럼 서 있게 되었다.

원경과 근경의 강약이 뚜렷한  저 그림들을 그리며 장화백은 어떤 거리감을 말해주고 있었을까.

보통 원경이 하나의 배경으로 존재하는 시각의 그림으로 본다면 흐릿하게 채색한 먼 산 앞에 그려진 가까운 소나무나 외우진 집은

구도상 그림의 주제라 볼 수도 있는데, 나는 저 그림들을 보는 순간 화면을 가득 메운 산맥에 압도되어

오히려 가파른 절벽앞의 풍경이 먼 절해고도처럼 느껴져 산과 분할된 경계의 선에서 먼 산을 바라보면 숨이 막히는 듯 했다.

그것은 산으로 꽉 찬 배경의 대비가 오를 수 없는 절벽의 높이처럼, 아니 다가설 수 없는 자연의 신비감처럼

가깝고도 먼 거리감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에서 수평으로 보는 안정된 구도의 공간성이 아닌 수직의 강한 힘으로 느껴짐은 중압감처럼

화폭의 8할이 산으로 채워진 까닭도 있겠지만 뿌옇게 막을 씌운 산그림자같은 생략된 배경의 단조로움이

오히려 다가갈 수 없는 먼 거리로 느껴지며 내 삶의 절벽처럼 다가서서인지도 모른다.

우리 삶에서 살수록 보이지 않는 벽을 느끼는 삶의 무게의 그 무엇이 저 그림속의 보이지 않는 경계에서 시작된

측정할 수 없는 거리와 세월이 지나면서 그려지는 근경을 위한 아득한 원경의 그림자는 아니였을까.

젊은 날엔 한 해의 끝자락에선 앞을 내다보던 시각이였다.

그러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지나간 먼 거릴 되돌아보게 된다. 아마도 그 자리에서 돌아보는 지금

내 자신의 쓸쓸한 존재감이 장화백의 그림처럼 앞이 트이지 않은 산맥으로 화폭을 메운 

막막한 공간앞에 선 한 그루 등굽은 소나무같은 모습은 아닌가 하며 조용히 나를 대입해 본다. 

그리고 언젠가 본 성스런 희말라야의 설산을 뒤로한 인간의 아주 작고 나약한 모습의 사진처럼

장화백의 멋진 원근법의 그림 앞에 서니 나는 비루하진 않더래도 더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비춰지는 것 같다.

산과 소나무와 나와의 거리에서 적막의 깊이만 더하는 겨울,

눈이 녹지않은 내륙의 산골은 빈집처럼 고독하다  ■

 

2007.12.18 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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