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읽는 詩

들깻잎을 묶으며 / 유 홍 준

먼 숲 2007. 1. 2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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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깻잎을 묶으며

 


          유  홍  준

 

 

 

추석날 오후, 어머니의 밭에서
동생네 식구들이랑 깻잎을 딴다
이것이 돈이라면 좋겠제 아우야 다발
또 다발 시퍼런 깻잎을 묶으며 쓴웃음 날려보낸다
오늘은 철없는 어린 것들이 밭고랑을 뛰어다니며
들깨 가지를 분질러도 야단치지 않으리라
가난에 찌들어 한숨깨나 짓던 아내도
바구니 가득 차오르는 깻이파리처럼 부풀고
무슨 할 말 그리 많은지
맞다 맞어, 소쿠리처럼 찌그러진 입술로
아랫고랑 동서를 향해 거푸거푸 웃음을 날린다
말 안 해도 뻔한 너희네 생활,
저금통 같은 항아리에 이 깻잎을 담가
겨울이 오면 아가야
흰 쌀밥 위에 시퍼런 지폐를 척척 얹어 먹자 우리
들깨 냄새 짙은 어머니의 밭 위에 흰 구름 몇 덩이 머물다 가는 추석날
동생네 식구들이랑 어울려 한나절 푸른 지폐를 따고
돈다발을 묶는, 이 얼마 만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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