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수신인 없는 편지 2

먼 숲 2007. 1. 26. 14:05

 

 

 

 

 

 

 

          또 다시 秋分이 지나고 낮이 짧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귀가길에서 노을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새 빠른 걸음으로 오는 어둠에 점령되어
          노을이 물들던 시각이 별빛같은 가로등으로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의 시간은 변함없는데도 단명해진 목숨처럼 하루는
          여유로워 보이지 않고 금새 사라지는 저녁마져 아쉬워집니다.
          언제나 절기의 변화는 확연해지고 사람 또한 보호색을 띄는 생물처럼
          그 변화에 적응하는 모습은 먼저 옷차림부터 바꿔가고 있습니다.
 
          계절의 언어란 참 아름다운가 봅니다.
          봄, 여름 가을,겨울.
          그 명사 어느 한 이름이 어색하고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 중 이젠 가을이란 다홍빛 명사를 화려하게 열거해보고 싶은 계절입니다.
          가을은 연상되는 주제도 너무 많아 일일이 나열하지도 않습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복사판 같은 사진처럼 가을이 찾아와도
          한번도 싫증나거나 질리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기다려지고 설레이는 마음입니다.

 

 

 

 


          가을이 올 적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거나
          올 곳도 없는 편지를 기다리는 속내를 드러내놓고 살지만
          점점 그러한 그리움이나 기다림도 시들어 갑니다.
          적어도 몇몇의 벗에게 그런 그리움을 전하고 싶던 시절도 희미해져 갑니다.
          그들이 나를 떠난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들을 떠난 것인지 모르지만
          멀어진 그리움의 경계선은 생존이란 세월의 장막이 그러하게 했나 봅니다.
          그 사이 절절해진다는 단풍빛 같은 형용사를 쓰기엔

          이미 퇴색되여진 마음의 빛깔입니다.


          가을이 되자 줄창 껴안고 살던 외로움조차 말라가고
          잎맥처럼 균열이 가서 다신 봉합할수 없을 것처럼 틈새가 벌어집니다.
          그만큼 모두가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무덤덤하게 지나칩니다.
          오늘 퇴근길에 저녁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얼굴들의 표정이 그렇게 굳어져 있었고 쓸쓸해 보였습니다.
          건조해지는 것은 들녘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도 그러한가 봅니다.

 

 

 

                                                               <사진 : 네이버 블러그 진달래산천에서>

                                                                                                


          중년의 나이가 더 깊어가는 가을이라선지
          내가 적재량을 초과한 과적차량처럼 기우뚱 거리기도 하고
          때론 엉뚱한 곳에 내 짐을 모두 내려놔 버린 것처럼 허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허전함이 빈 수레처럼 가벼워진 것이 홀가분한 게 아니라 

          불안하고 공복처럼 허하고 허기집니다
          욕심일망정 여물지는 못해도 꽉 차고 넘쳤으면 합니다.
          빈 곳간이 아니라 가득하게 쟁여진 만선의 기쁨을 맛보고 싶어집니다 

 

          아직 단풍소식은 도착하지 않았지만 
          단풍은 모르는 사이에 어느날 서서히 붉고 노랗게 불붙어 버리고
          마치 은밀한 내통을 하듯 산줄기들은 비밀스러운 단풍 축제를 합니다

          아침마다 먼 산을 바라보며 단풍을 점검하는 요즘
          벌써 얼마전에 받아든 편지에 쓰인 굴신(屈伸)이란 언어를 읽는 순간

          별안간 신음소리도 없이 드러누워 있는 외로운 자신을 발견합니다


          마음 한쪽이 마비된 앉은뱅이처럼 주저앉아 마치 허리를 꺾인 것처럼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 걸 봅니다
          그가 이 가을 옷을 벗은 나목처럼 홀가분하게 일어설 수 있을런지요?
          혼자 굴신할 수 있을런지요?

          이유도 없이 까닭도 없이 가슴을 앓는 계절

          들판에 질펀히 깔린 먼 생각을 쫓습니다.

          흔들려 쏟아지는 찬란한 시름이 붉어지는 계절입니다.

 

 


          2002.9.26일. 먼    숲

 

 

          ■ 오래된 메모 "추억의 오솔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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