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층 건물 위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은 참으로 안정적입니다. 올려다 보는 부담감이 없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시야의 불안감도 없고 고개를 쳐 들고 봐야하는 불규칙한 시선의 움직임도 없이 한눈에 응집된 구도가 그림처럼 제 자릴 잡게 되지요 십일월의 가운데서 내려다 보는 가을의 거리는 아름다운 정원의 산책로로 보이는 시각적인 변신을 가져옵니다
인도를 따라 줄지어 선 태평로의 은행나무가 황금빛으로 멀리 광화문까지 이어져 다시 삼청동 골목으로 이어진 풍경은 작은 조감도의 모사그림 같군요. 진달래 개나리 피는 남산의 화사한 풍경도 좋지만 가까이 보이는 북한산과 남산의 울긋불긋한 단풍은 한층 도심의 우울한 회색빛을 거둬내고 화려한 외출을 유혹합니다
멀리서 바라 본다는 이 관망의 여유는 좁은 시야의 답답함에서 벗어나 넓은 공간까지 포용할 수 있는 넉넉함 때문이겠지요 세상의 움직임이 스크린 속의 영화처럼 보이고 높은 산위에서 내려다 보는 열려진 각도의 무한함 때문에 옹졸하게 쌓아 놓았던 숱한 감정을 버릴 수 있는 등산의 묘미처럼
도심속 20층이라는 높이는 마천루는 아니지만 잠시 좁은 공간에 갇혀있는 비품이나 가구같은 폐쇄적인 마음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 보는 관조의 시각은 그 아래 거릴 거니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보인다는 점에서 난장이 나라처럼 축소된 키와 보폭이 평화로워 보이고 질주하는 난폭한 차량의 행렬도 위에서 보니 날렵한 물고기의 유영처럼 흐름이 유연합니다 내가 함께 하고 내가 속해 사는 주위의 모습을 리모콘으로 조정하듯 정지 화면으로 볼 수 있는 여유로움에 삶의 중심에서 내려다 보는 시선은 가까이서 먼곳으로의 순간이동도 자유롭습니다

문득 먼 바다가 보일것 같아 자꾸 목을 빼는 그리움에 가을은 우수수 낙엽을 털어냅니다 오색 찬란한 남산도 붉은 잎은 더운 선지빛으로 붉어지고 거리의 노오란 은행잎은 노래질수록 우수수 옷을 벗어 차거운 콘크리트 거릴 덮어 줍니다 아직 낙엽이 다 지기엔 가을의 끝이 남아 있습니다
높은 건물의 멋스런 그릴은 아니더래도 쇄골이 드러나는 가을산의 중턱을 넘어서 바람이 스산한 십일월의 끝에서 잠시 호흡을 고르며 한 해의 삶을 관망하노라면 격한 감정으로 더부룩한 마음은 벗어 버리고 거추장스런 잡동사니의 생각도 털어 버리며 쉼없이 질주하는 조급한 생각에 잠시 제동을 걸어 보게 됩니다
찬바람에 종종거리며 걷는 보행길에서 잠깐 시선을 들어
낙엽이 바람에 작별하는 손짓을 지켜보기도 하고 웅크린 어깨를 감추고 가로수 길을 걷다가
붐비는 인파로 스치는 시장통의 포장마차에서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오뎅국물로
스산한 늦가을의 마음을 녹여 봄은 어떤지요
내 삶의 눈 높이에서 한 계단 내려와 나로 인해 서운케 한 사람 없을까 나로 인해 아프게 한 사람 없을까 돌아 보고 내가 발 디딘 땅높이에서 따슨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이웃과 가족의 사랑을 확인함은 어떨까요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을
낙엽이 지는 하늘가에 정지시켜 봅니다
떠남을 준비하는 이 시린 계절에
2001.11.16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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