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꽃이 산자락마다 흰눈이 내린것처럼 만개할쯤이면 산 능선 넘어 짝을 찾는 뻐꾸기 울음이 산골짜기마다 뻐꾹!. 뻐꾹!. 메아리쳐 가고 이때부터 부지런히 모내기가 시작되면서 마을의 농군은 부산하게 꽃향기도 잊은 채 논에서 살았지요.
논배미마다 써레질을 마친 논은 가득 물을 담아놔 마치 줄지어선 염전처럼 보였고 간혹 백로들이 유유히 미꾸라지라도 건질까하고 긴 목을 늘어뜨리고 한가로운 자맥질을 하면 못자리의 어린 모들은 갓난아기의 배냇머리처럼 하늘거렸습니다.
벌써 어디선가 어이! 어이! 하며 못줄을 넘기면 일렬로 늘어선 일꾼들이 굽어진 허리를 동시에 일으키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반복적인 동작이 계속될수록 허허롭던 논배미는 파아랗게 초록으로 물들어 가는 아주 평화롭고 목가적인 풍경이였습니다.

논두렁엔 못짐을 나르는 아이들이 뒤뚱대고 저 건너 미나리아재비꽃 환한 갯뚝에선 벌써 새참을 준비하는 푸짐한 광주리의 음식들이 풀밭에 차려지고 쭐레쭐레 따라나선 백구는 빈 광주리만 지키고 앉아 있었습니다. 엄마 치맛자락을 부여잡고 따라나선 꼬맹이들은 자운영과 토끼풀꽃이 탐스럽게 핀 풀밭에서 꽃목걸이와 꽃시계를 엮으며 종다리처럼 재잘거렸지요.
모판에서 모찌던 새댁이 엄마야! 하는 비명에 돌아보면 영락없이 못자리에 꽃뱀이 또아릴 틀고 노려봐서 새댁은 개구리처럼 사색이 되어 뛰쳐 나왔습니다. 못짐을 나르느라 산처럼 짊어진 지게의 바작사이로 물이 뚝뚝 떨어져 논길은 기름칠한듯 맨들맨들한 미끄럼틀이 되었는데도 미끄런 논두렁을 줄타기하는 곡예사처럼 잘도 걸어가는 농군의 뒷모습이었지요.
그러나 이미 사라진 풍경입니다. 지금사 트랙터와 이앙기로 왔다갔다 하면 되는 편한 세상이라 모내기철인데도 논배미엔 사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입하가 지난 지 오래인데도 지금 절기가 어느때인지 아카시아는 환하게 피었는데도 모내기철인지조차 모릅니다. 그 때는 귀한 일손을 따라 북상하는 꽃소식처럼 모내기 철이면 남쪽에서 북쪽으로 부지런한 처녀들이 원정와서 한달씩 일하다 남쪽 처녀,북쪽 총각이 눈이 맞아 가을이면 결혼하던 풍습이 있었는데 이젠 옛이야기입니다.

이맘때쯤 일손이 없어 사람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였습니다. 그 당시 진달래가 뺑둘러 피는우리 동네 구석진 산비탈에 초가로 된 작은 자매의집인 수녀원이 있었지요. 수녀원엔 프랑스 수녀님도 계셨고 모두 파란 하늘빛 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가까운 곳에 텃밭을 일구어 손수 농사까지 지으시고
바쁜 농번기때는 서툴지만 기도시간 외엔 품앗이도 해가며 동네 대소사까지 같이 어울려 정말 자매처럼 일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내기를 부탁하러 처음 수녀원엘 갔었지요. 이미 모두 이웃으로 친하지만 수녀원에 들어가 보긴 처음인데 그 저녁 반겨주신 자매님들이 내놓은 것은 향기로운 아카시아를 살짝 튀김가루에 묻혀 금방 튀겨낸 아카시아 튀김이였습니다. 그 향긋하고 고운 음식을 푸르른 떡갈나무가 깔린 소반에 향기롭고 다소곳하게 차려 내신겁니다.
정말 아름다운 성찬같아 차마 먹기에 부담스럽던 아카시아 튀김이였지요.
수녀님들의 청빈함과 믿음이 마루결에 윤이나게 배어있었고 작은기도실엔 성경책과 촛불만이 깊어져는 시골저녁을 고즈넉이 비추고 있었습니다. 마당가엔 탐스런 수국이 달덩이처럼 피어 있었고 산비탈에선 오월의 훈풍에 싱그런 아카시아향기가 저녁 어스름처럼 기도원을 맴돌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오월이 오면 입안에서 감도는 아카시아 향기속에 떡갈나무 잎이 깔린 소반에 놓여진 아카시아 튀김이 기억의 갈피마다 바사삭 하는 파열음으로 전해져 옵니다. 이제 넓은 논배미에서 흥겨운 노랫가락을 따라 일하던 모내기는 추억으로 남겨진 아련한 풍경이지만 지금도 써레질을 마치고 찰랑찰랑하게 논물이 채워진 논배미를 보면 먼 지평선까지 푸른 詩語로 아득한 모내기를 하고 싶어집니다.
2000년 5.25일 먼 숲
<옛 글 "추억의 오솔길" 중에서>

<한국화 김 호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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