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아카시아꽃 피던 날의 교정

먼 숲 2007. 1. 26.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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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둘러 싼 구릉의 언덕엔 유월이 가까워 오면
아카시아꽃이 꽃구름처럼 하얗게 피어 올라 벌떼가 잉잉대고
교실 창문을 열면 달콤한 꽃향기가 훈풍에 실려와
열 일곱의 꽃띠 학생들은 그리움에 가슴이 알싸하니 취해 있었다.

교정의 화단엔 탐스러운 수국이 한창이고
교무실 옆으론 노란 창포와 보랏빛 창포 꽃이 나비처럼 피었었다.
서쪽을 향한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지만
빙 둘러친 아카시아 향기가 그 운동장마저 점령해버려
창가쪽의 단발머리 여학생들은 자꾸 그 운동장을 내다보곤 했다.

수업시작 종이 울리자 웅성거림이 잦아들면서 모두 복도쪽으로 눈길이 쏠린다.
그 긴 낭하를 가로질러 오시는 선생님의 싱그러움이 눈부셨기 때문이다.
큰 키에 하얗고 투명한 피부의 고운 얼굴과 웃을 때 패이는 보조개와
가끔 생머리를 손수건으로 질끈 동여매고 오시는 영어 선생님은 남학생뿐 아니라
옆에 앉은 민감한 여학생들조차 여선생님의 미모와 활기찬 모습의
다양한 패션과 사소한 소문까지 관심의 대상이였다.

 
어느날은 짙은 화장도 서슴지 않고 긴 다리에 통바지를 너풀거리며 오시기도 하고
어떤 때는 맵시 있는 미니스커트와 청바지 차림까지 바꿔가면서
갓 졸업한 여대생의 싱그럽고도 지적인 멋스러움을
그 매혹적인 보조개의 미소로 마무리 하셨다.
첫 부임한 여선생님은 곧잘 짓궂은 남학생들의 시달림을 받곤 하지만
오히려 우리들이 당당하고 유쾌한 이 선생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호락호락하지 않고 아이들의 짓궂음에 되받아 치는 유머와 재치가
인기 있는 여선생님 일 순위가 되어
그 지겨운 영어시간도 꼼짝 못하게 하셨다.

 

요즘은 남녀공학이 다반사지만
그 당시 고등학교 일학년생들이 처음 남녀공학이 되어 한 반에서 공부하는 것은
무척 낯설고 수줍어 한동안 시골의 순진한 학생들은
서로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남학생들이 내외하느라 쉬는 시간엔 밖에서 어슬렁거리다
종이 치고 선생님이 오시는 것을 본 후에나
우르르 교실로 뛰어들어 오는 어색한 분위기였다.

 

 

 


이제 갓 졸업한 개방적인 이 처녀 선생님은
이런 낯설고 경직된 분위기를 바꾸기 시작했고
어느날 체육시간에 그 작전이 시도되었다.
탈의실이 변변히 없어 남학생은 쫓겨나
위층 계단 구석진 곳에서 옷을 갈아 입고
여학생이 다 갈아입고 난 후 문을 열어줘야 교실로 들어 갈 수 있었다.

 

남학생들은 체육시간이 끝나고 옷을 갈아 입으려고
모두 주섬주섬 교복을 챙겨 들고 위층 구석으로 나갔다.
먼저 바지를 입으려 발을 집어 넣으니까 발이 들어가지 않았다.
윗도리를 입으려고 팔을 집어넣어도 팔도 들어가지 않았다.
모두 팬티바람에 놀라서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체육시간동안 여자 당번들이 남아서
남학생의 바지통과 팔을 모두 실로 꿰매 놓은 것이다.
모두 어이없어 하면서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이 황당하면서도 재미있는 사건이 실마리가 되어 남학생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모두 똑 같이 보이는 교복과 스커트를 바꿔 놓거나 도시락 바꿔 감추기 등
장난이 시작되었고 심할 때는 실내화와 방석에 물을 부어놓는 심통까지 부렸다.
차츰 어색했던 분위기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숙제 안하고 와서도 뻔뻔하게 손바닥을 맞았다. 
  

그 황당한 사건의 주동자가 바로 영어 선생님이셨다.
바라보면 눈부신 미모의 젊은 영어선생님은
학생들의 친구이셨고 선배처럼 어울려주거나
예민한 사춘기 학생들에게 러브스토리를 들려주기도 하고
선망의 대상인 대학시절의 얘기를 들려주시면서
닫혀있던 우리들 마음의 창문을 열게 하고
많은 궁금증을 풀어 주시면서 남녀간의 우정의 열쇠를 만들어 주셨던 것이다.

 

 

 

 

지금은 오래 전 추억이지만
그 때는 저 오월의 신록처럼 푸르고 싱싱했던 참 좋은 시절이었다.
지금 그 영어 선생님은 젊은 할머님이 되셨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발랄하고 싱그럽던 선생님이
할머니가 되었을 것이란 사실이 믿어지지 않지만
설사 하얀 머리의 할머니가 되셨더라도
영원히 그 아름답고 싱그럽던 모습의 선생님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오월이 되면 선생님이 부르셨던
메리 홉킨스의 “Those Were The Days” 란
노래가 생각나 가끔 그 리듬을 흥얼거린다.
어쩌면 선생님은 메리홉킨스의 그 목소리처럼
밝고 경쾌한 느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까. 그 노래가 흘러나오면 메리홉킨스가
우리 영어선생님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한다.

이 노래를 기억하게 된 것은 그 해 봄소풍 때문이었나 보다.


요즘처럼 산색이 날로 초록으로 짙어지고
봄이 한창 무르익을 때 행주산성으로 소풍을 갔었다.
강바람이 산 꼭대기까지 치고 올라 와 시원하고도 싱그러웠다.
학교와 가까워 흥미 없는 소풍이지만 점심 후 레크레이션의 절정인
각 반의 노래자랑에서는 흥분되어 있었고
끼 있는 학생들의 장끼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기 최고였다.

 

 

 

                                                                      <메리홉킨스>

 

 

그렇게 진행된 노래자랑에서 인기 최고의 여선생님을 그냥 놔 둘 수는 없었다.
드디어 선생님의 이름이 호명되고
긴 생머리의 영어선생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학생들의 환호성이 터졌고 그래도 시골학교에선
다소 생소한 팝송인 이 노래를
떨리는 바이브레이션으로 환한 미소를 지으시면서 부르셨다.

 

라 라 라 라 라라 라라라 라 라라~~~~~~~~~~
차츰 연녹색의 수양버들이 휘늘어지듯
선생님의 리듬은 봄바람처럼 한들거렸고
나는 그 노래에 취해 아직도 그 추억의 순간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학생들은 그 발랄하고 멋진 선생님에게서 그 당시 유행하던
고고춤이나 개다리춤이라도 기대했을지도 모르는데
선생님은 수줍게 그 노래를 부르셨던 것이다.

지금 그 때의 기억을 쓰고자 가사를 찾다 보니
이 노래가 놀랍게도 집시의 노래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찌고이네르바이젠이나 브라암스의 헝가리 무곡 같은
집시의 춤곡이라는 것을 알고 보니
그 노래의 빨라지는 후렴에서 집시풍의 리듬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도 생생한 그 때의 기억에서 대본을 각색해 본다.
머리에 새빨간 동백꽃을 꽂고
화려한 화장과 치렁치렁한 집시풍의 옷을 입은 선생님이
빨간 메니큐어를 칠한 손에 캐스터네츠를 달고
아카시아꽃이 일렁이는 꽃 그늘 아래서
조용히 그 노래를 부르다 점점 템포는 빨라지고 그 리듬에 맞춰
열정적인 손과 발놀림으로 빠르게 춤을 추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정말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셨던 영어선생님!
부디 몸 건강 하시고 그 아름다움 간직 하신 채 늙지 마시옵소서.
오늘 추억의 이 노래를 다시 들으며
참 좋았던 학창시절을 회상합니다.
지금 인천의 어느 여중 교장선생님으로 재직하고 계신 스승님
늘 장미처럼 아름다우시길 바라며 마음의 꽃다발 드립니다.


2001.5.12일. 먼    숲
 
 
<옛 글 "추억의 오솔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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