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산그림자

바람의 숲

먼 숲 2007. 1. 26. 08:40

 



 


woo2





숲에 서서



- 정 희 승 -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을 때
나는 숲을 찾는다
숲에 가서
나무와 풀잎의 말을 듣는다
무언가 수런대는 그들의 목소리를
알 수 없어도
나는 그들의 은유(隱喩)를 이해할 것 같다.
이슬 속에 지는 달과
그들의 신화를,
이슬 속에 뜨는 해와
그들의 역사를,
그들의 신선한 의인법을 나는 알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이기에,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나는 울면서 두려워하면서 한없이
한없이 여기 서 있다
우리들의 운명을 이끄는
뜨겁고 눈물겨운 여유를 찾아
여기 숲속에 서서



바람의 근원지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곳은 상수리나무 우거진 깊고 고요한 골짜기였습니다.
일제히 나무들이 등을 굽히거나 누워서
외로움의 몸부림을 치는 동안
바람은 골골히 푸른 불처럼 일어나
능선을 타고 날아갔습니다.
적막함을 깨는 소리의 근원지
그 숲의 고요한 계곡에서부터였습니다.
위로할 수 없는 공허한 한숨소리가
어둔 숲의 허파에서부터

낮은 대금의 단조처럼
쓸쓸한 바람이 되었습니다.
내 안의 숲에도 바람이 입니다.
저녁나절 간헐적으로
노을이 지는 산기슭에서 서걱거리거나
달빛으로 흐느끼다 잠들어
차가운 이슬이 되기도 합니다.

2003.7.9일. 먼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