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숲을 앞에 두고 아이는 도서관으로 아내와 나는 병원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 숲으로 들었다. 무릎 연골이 굳어지는 나이라선지 몇번의 등산길에 무릎의 충격이 온 것 같다는 아내의 발걸음에 맞춰 모처럼 낮은 길을 느릿한 행보로 걷는다. 환자복을 입은 몇몇 환자의 산보와 링겔을 꽂은 채 휠체어에 앉아 바람을 쏘이는 핼쓱한 얼굴을 애써 피하는 우리의 눈길에서, 저물어 가는 세월을 들키고 마는 아침의 햇살은 벌써 산자락에 깊은 산그림자를 묻는다. 멋적은 발걸음으로 나란히 걷는 것이 서먹해 FM라디오를 켜고 이어폰을 꺼내 귀 하나씩을 나누어 갖는다. 파르르 몸을 떠는 미루나무 서너그루를 지나면 늙은 리기다 소나무숲에서 오솔길이 끝난다. 내 나이보다 늙은 리기다 소나무는 비루먹은 듯 잎이 마르고 버즘먹은 껍질이 거칠다. 어쩌면 저 나무들은 나와 같이 이 곳에 서서 변해가는 내 생의 풍경화를 지켜보며 사라져가는 세월의 영역에서 살아 남아 둥근 나이테를 불려왔는지 모른다.
마른 삭정이와 엉긴 송진 가루가 시간의 풍화처럼 늘어져 있는 그 길 끝 벤취에 나란히 앉아 우리 부부는 마음에 비춰드는 자신들의 그림자를 조금은 들쳐 보았으리라. 그리고 젊은 연인들이라면 입맞춤이라도 했을 한적한 벤취에 앉아, 간간이 오솔길을 걸어 와 숨을 고르고 가는 나보다 더 나이든 사람들 앞에서 젊은 부부처럼 행세하며 멀지 않은 노년을 몰래 그려 보았으리라. 그 곳은 이른 봄 폐경기에 든 아줌마들에게 높지 않은 산꼭데기 정상 마루에 터를 내 준 할머니들이 밀리듯 내려와, 나무로 만든 운동기구에 매달려 걸음마 배우듯, 겨울동안 굳어진 몸을 조심스레 움직여 주던 곳이다. 나뭇잎 움트는 새벽이면 카세트에 이박사 메들리를 틀어 놓고 신나게 몸을 흔들며 운동하는 기운 찬 며느리 세대에 밀려 이 곳에서 할머니들은 하나 둘 하나 둘 구령 소리를 하며 팔 다리 운동을 하곤 했다.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생겨난 이 오솔길은 예전엔 오가는 발길 드물어 산새와 개구리, 뱀이나 오가던 억새 우거진 숲이였는데 타향에서 이주해 온 많은 시민들을 위해 정수리에 가르마 타듯 길을 내고 지금처럼 고령의 나이에 든 모습으로 늙어갔다. 나는 가끔 이 길을 걸으며 오래 전 김포 벌판으로 지는 해를 따라 가버린 내 청춘을 회상하며 이 곳 어디에 편린처럼 떨어진 추억 한 조각 없는가 뒤적였다. 그러나 나는 이젠 한 가정을 이뤄 둥지를 틀고 새로운 세계를 살고 있다. 그 때의 나를 멀리한 채 지금 여기 다른 모습으로 앉아 있다. 부부간에도 침묵의 시간이 많다. 거울처럼 빤히 보이는 삶의 모습을 애써 끄집어 내어 말하는 것도 오히려 낯설기 때문이다. 한동안 말없이 푸르러 가는 벌판을 숨고르기하듯 바라보고 있다가 앉았던 자릴 일어나 다시 산길로 접어 든다. 슬며시 손을 잡고 가지만 아직도 손을 맞잡고 가면 갑갑하고 쑥스런 마음이 붉어진다.
FM에서 정겨운 음악이 연속적으로 들려 온다. 비틀즈의 히트곡을 여러 쟝르로 편곡한 곡을 모아 특집 프로로 엮은 모양이다. 전에도 들었지만 비틀즈의 곡을 첼로와 현악으로 연주하는 곡 역시 명곡이다. 오래되었다는 건 이처럼 새로운 것 보다 편하고 정겨울 때가 많다. 올드 팝 세대인 우리는 모처럼 경쾌하게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한쪽씩 나눠 가진 귀가 떨어지지 않으려고 보폭을 맞추고 아내는 팔장을 끼며 사이를 좁힌다. 연애시절이 없던 우린 아직도 서로 목석처럼 뻣뻣한데 늦게서나마 다정한 연인의 포즈를 연출하는 셈이다. 그러나 잠시, 산그늘 서늘한 조용한 길을 걷다가 나타난 작은 진창을 피하다 그만 한쪽 귀를 떨어트렸다. 그 작은 장애물을 동시에 건너지 못하고 난 혼자 피하며 비껴가다 어설프게 귀를 잃고 말았다. 나는 아직도 살갑지 못한 애정표현을 들켜 버린 것 같아 모르는 척 미안한 마음을 숨기며 싱그런 나무 냄새를 크게 호흡해 본다.
문득 부부란 어떤 관계일까 하는 의문을 떠 올린다. 살면서 닮는다는 공통적 분모는 꼭 사랑이라는 풀 수 없는 의미로만 해석될까. 그보단 서로간에 이해와 배려가 먼저 아닐까. 하나의 자궁안에서 나온 형제들도 엄격히 다른 성격으로 남남인게 사실인데,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만나 살아가는 관계에서 서로가 서로를 덮어주고 아껴주는 보이지 않는 이해와 배려는 진실한 인간의 존중이 아닐까. 살다 보니 굳이 흔하게 퇴색해 버리고 변하는 남녀간의 사랑이란 감정은 뒤에 두고 싶다. 아마도 사랑이란 의미는 표현하기 어려운 너무 깊고 오묘한 것이라서 나는 애써 피하고 싶은 것 같다. 그러나 점점 살면서 부부간에는 연민처럼 서로가 바라보는 마음이 때론 아리고 가여워 등을 내 주고 싶고 기대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부부는 마치 사람 인(人)자를 이루는 하나의 획처럼 없어서는 안 될 관계는 아닐까. 닮아간다는 것은 그러한 이해타산없는 아름다운 양보심의 모습인 것 같다.
바람이 불어가는 방향에 따라 이쪽 저쪽에서 달고 비릿한 밤꽃 향기가 실려 온다. 푸르른 대지도 오늘처럼 밤꽃 향기가 진한 계절이 가장 풍성하고 기세가 좋다. 황토가 정겨운 언덕길을 오르며 나는 아내에게 밤꽃 향기를 아느냐고 색깔있는 질문을 했다. 서울내기인 아내는 자세한 걸 모르고 있어 나는 웃으면서 부끄럼 없이 오묘한 자연의 향기를 설명한다. 이미 나도 노란 원추리꽃이나 패랭이, 나리꽃이 피는 여름이 오면 공연히 마음 허전해 산길을 걷던 푸릇한 시절은 갔다. 어쩌면 아내는 이 길을 걸으면서 나리꽃 같던 자신의 처녀적 모습을 그리워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중년이 되어 허물어져 가는 몸매를 감추려 애쓰는 지금의 모습이 더 아름답다는 건 아는지. 정욕처럼 달콤한 밤꽃향기가 지면 곧 칠월이 오고 여름이 펄펄 끓을 것이다. 이젠 그 더위를 견뎌야 하는 에너지를 조금씩 걱정한다.
2006.6.26일. 먼 숲
<사진 : 네이버 포토갤러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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