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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자식 농사로 빨리 키워야 하는 마음이 한 시가 급한 처지이지만 한 해 사이에 육년을 뛰어넘어 중학생이 되었고 또 내년에 한 놈이 큰 놈을 �아 중학생이 된다. 그러면 내 후년엔 큰 애가 고등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는 건 요즘 대학이나 진배없는 듯 하니 학교 가르치는 일이 장난 아닐 듯 싶다. 일년 사이 중학생이 된 큰 애의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미 삼십년 전에 그만 둔 부모의 학교 생활의 연장선으로 이어지고, 아니 그 때보다 지켜보는 지금이 더 중압감을 느끼게 한다. 참으로 심각한 교육열의 광풍에 휩쌓이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유별나지도 않고 남 하는 것 반 정도 따라가는 것 같은데도 이리 벅차니 앞으로의 전쟁이 두렵다. 그렇다고 대신 내가 하는 공부도 아닌데 그런 엄살이니 직접 시달리는 아이들의 심정이야 오죽하랴. 지금이사 아이들이 공부 잘하는 게 더 먼저이겠지만 부모로선 벌써 가난한 가계비의 절반을 넘게 잘라먹는 사교육비를 생각하니 과외공부와 변변한 학원 구경도 모르고 그저 상급 학교 다니는 걸로도 부자였던 나의 옛 시절이 지상낙원인 거 같다.
지금 들에는 풀이 기름지고 나뭇잎이 윤기나게 촉촉한 유월이다. 꼴지게 지고 산섶이나 풀섶으로 나서면 야들야들하고 맛나는 소꼴이 그득하다. 그 생각을 하니 숫돌에 반질반질 날을 세운 낫으로 해저녁 꼴이나 한 짐 베어 오고 싶다. 그리고 구름같은 생각이지만 자라는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하여 어깨살 단단하고 엉덩이 암팡지게 생긴 암소 한 마리 키우고 싶은 생각이다. 지금부터 서너해동안 새벽녘부터 소죽 끓여 먹이고 낮이면 꼴 베고 논,밭갈이 하여 품이라도 팔면 그 사이 암소는 새끼 낳아 또 한 마리 불려 키우고, 그러다 보면 아이들 대학 갈 땐 황소 장학금이라도 받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 앞선다. 더불어 텃밭께에 돼지막 하나 짓고 돼지 한 쌍 키우면 더 좋을 듯 싶다. 식당 돌아치며 잔밥이라도 모아 배불리 먹이고 가끔 등이라도 시원하게 긁어주면 영리한 거먹돼지도 오글오글 새끼 불려서 돼지막이 좁아질 것이다. 돼지와 닭은 궁합도 좋고 하니 내년 봄엔 병아리 열뎃마리 사서 라면 상자 안에 키워 밖에 내 놓으면 닭들은 돼지밥그릇 청소도 하고, 텃밭에 그득한 벌레랑 마당가의 나락들 파 먹으며 살찐 씨 암닭이 되어 무거운 궁댕이를 씰룩대며 싸 돌아 다닐 것이다. 세상 살면서 살림살이 부는 재미가 이렇다 하면 오죽 좋을까만 철지난 꿈같은 이야기다.
집안에 숨겨 논 황금 송아지 하나 없고 애들 첫돌 때 들어 온 애기 돼지는 IMF관리 때 나라 어려워 금이라 해서 팔아 버린 지 오래다. 요샌 그나마 동전도 쓰지 않는 때이니 뻘건 프라스틱 돼지도 키우지 않고 있다. 그 뿐인가. 농촌에선 쌀 농사마져 포기해 소로 쟁기질 할 일 도 없지만 미국 소, 호주 소에 외국 돼지, 닭이 냉동으로 들어 와 정육점과 할인마트에 날마다 세일 표지판을 내 걸고 있으니 금값이던 고기값이 구리값이다. 그나마 광우병에, 콜레라 전염병 한 번 지나가면 풍비박산 되고 마니 아무리 내가 꿈같은 헛소릴 한다지만 상전벽해같은 세상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니 나도 나이는 먹어 늙어가고 벌어 논 돈도 없고 그 든든한 교육 보험도 없는 처지라 소 한마리 키우고 돼지 서너마리 키워 애들 대학 보내던 우골탑의 희망도 공수표가 아닌가. 하기사 가난도 대물림이라더니 내 부모 때 소 한마리 키우지 못하고 빈 헛간으로 살아 온 내가 그런 꼴인가. 힘들 게 자라서인지 내 자라면 힘 쎈 황소 한마리 키워 보리라 했는데 꿈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만다. 내 어릴 땐 그 집안의 힘을 황소들이 대변해 주었다. 소 팔아 땅 사고 소 팔아 대학 보내던 막강한 재산이 황소였으니 커다단 외양간을 보면 자연 주눅들 수 밖에 없었다.
세상 사는 게 옛날처럼 부지런히 일하고 키워서 차곡차곡 돈 벌고 불려가는 순리적인 부와 희망이 다시 살아나는 세상이였으면 좋겠다. 정정당당히 자신의 능력으로 잘 사는 사람도 많지만 언제부턴가 어느순간 개발지 아파트와 땅값으로 벼락부자가 되고 부정과 탐욕으로 치부된 돈으로 더욱 세를 불리며 커가는 병폐가 만연되었다. 보이지 않는 가난함으로 가세는 더욱 기울고 이젠 목부나 청소부조차 일하기 어려운 실업의 어둔 그늘이 깊어져 가고 있다. 그런 현상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부의 편중과 저출산으로 자식에게 이기적인 부모가 많아지면서부터 더욱 열병을 앓는 과도한 교육열과, 어디가 아프고 잘못되었는지 진단조차 못하는 돌팔이 의사 같은 교육정책에서 비롯된 세계 제일의 과다한 사교육비로 허릴 휘청하는 지금의 현실은 아이들이나 부모에게 분명 절망적이다. 하기사 소 팔아 대학 보내던 그 시절의 부모들 사정도 지금보다 덜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황소커녕 팔아 치울 돼지 한 마리 없이 가난해 늘 상급학교 진학시엔 절망의 연속이였고 정상적인 대학 입학은 애당초 꿈을 접게 하는 아픈 절망이였다.
사실 아이들이 커 갈수록 더욱 작아지는 부모의 입지가 이런 엄살적인 이야길 늘어 놓고 있게 하지만 그보다는 대학을 보내기까지의 과정에서 한창 푸르고 싱싱해야 할 아이들이 공부와 성적과 등수와 내신과 과외등으로 온통 대학입학을 위한 경쟁력에 튼튼한 성장판을 다치고 병약해져 가는 현실이 더욱 암울하다. 그러한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어릴적부터 유학길을 택하거나 방학때마다 떼를 지어 어학연수를 떠나는 요즘 허덕이며 살면서 자식 뒷바라지에 소홀한 부모는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살이에서 차등의 관계는 분명 있고 공부 잘하고 좀 처지는 성적의 평가는 큰 문제는 아닌데 일류 대학을 가기 위해 지금 공부하는 아이들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은 살벌하고 치열한 것 같다. 어릴적부터 학교보다 학원의 공부가 우선적이 되고 방과 후 학원가로 몰려 우왕좌왕 하는 아이들과 우후죽순 늘어나는 학원가의 번성에 비해 흔들리는 공교육의 실태가 실로 두렵기만 하다. 학생이나 부모 모두가 학원이나 사교육에서 보충되지 않으면 불안하고 선행교육이 되지 않으면 뒤쳐지고 힘들어지는 작금의 현실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과연 아이들의 희망은 무엇이고 올바른 인성교육은 무엇인지 암담할 뿐이다.
몸과 마음을 살 찌우기 위해 교육한다는 체육과 예능, 글쓰기 등, 실기교육들마져 내신의 평가 대상이 되어 과외까지 받느라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요즘의 아이들이 안스럽다. 한창 푸르고 기름져야 할 아이들의 여름이 메마르고 척박하다. 건강하고 자유로워야 할 여름이 속박과 제도에 얽매여 시들어 가고 있다. 꿈과 희망으로 싱그러울 나이에 불확실한 미래에 목졸려 사는 젊음을 보면서 세상사는 게 늘 그랬다는 막연한 위로는 너무 슬프다. 늦었지만 힘찬 자유와 뜨거운 열망에 목말라 하는 그들에게 촉촉한 사랑의 단비가 내려 오그라들지 않고 건강하고 푸르르게 자랐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직은 청청하다고 억지로 자위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세월에 늙어가는 나는 옛날처럼 힘 쎈 황소 한 마리 기르며 순박한 황소와 눈 맞추고 꼴이나 베다가 푸짐한 꼴망태엔 달콤한 산딸기나 꺾어 얹고 노을지는 둑길을 따라 황혼의 여름을 지나가고 싶다. 살면서 황소처럼 듬직한 믿음에 등 기대며 조급하지 않은 마음으로 내일을 살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이 편리해지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쿼터(Quarter)현상의 시대에 이렇게 유효기간이 지나 버린 마른 꿈을 꺼내보며 잠시 시름의 터널을 벗어나 보는 나는 아직도 철없는 방랑자인가 보다.
아! 황소 눈망울 같은 슬프고 선한 시간만 남았는가!
2006.6.19일. 먼 숲
<사진 : 김선규 기자의 갤러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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