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이지 않는 별이였습니다.
지금 내리는 눈 속에 묻혀 잠들면
깨어나지 못할 줄 알았는데
달무리가 하얗게 사윈 새벽 기침소리에
눈부신 아침을 맞이합니다
내 사랑과 이별하고
그리움으로 헤어지는 속울음 목메이며
떠나는 연습도 이젠 아름다워진 지금
눈을 뜨면 추억의 빗살무늬로 바람이 붑니다
저무는 저녁해를 따라
나는 어디로 가는지 꿈으로 여행하지만
언제나 되돌아오는 내 고향은 지금 이곳
애당초 산 넘어 산은 없었습니다
기나긴 겨울잠에 내 영혼도 잠들고
나 또한 옷을 벗고 자연의 한 몸 되어
동면의 팔베개로 꿈 속에 누우면
화사한 봄빛의 아스라한 환상이 아른거려
마음엔 봄이 되어 눈 뜨고 잠듭니다
아침 햇살이 은혜로운 빛인 것을
해가 저문 나이에야 깨달았고
어둔 밤이 새로운 시작의 여명인 것도
오랜 침묵의 밤을 보낸 뒤에 알았습니다
이젠 끝이로구나 생각했을 때
마지막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있고 내가 없고가 아닌
태어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이 아닌
단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일 뿐이란 걸 알았습니다
모두가 다른 곳에서 순간을 살아갈 뿐이지
영원한 존재의 그림자입니다
영혼은 잠시 먼 우주에서 여행 온
사랑스러운 작은 별이였습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작은 별이였습니다
내 우주의 안에서 스스로
빛이고, 꽃이고, 바람이고, 자연이였습니다.
2000년 1월 5일. 먼 숲
< 친구 베드로에게 이 시를 받칩니다>

죽음을 받아드리며, 죽음을 준비한 채
이젠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서 눈물로 얼룩졌던 이 시를 안고
반년을 더 살았던 친구 베드로를 어제 영영 땅속에 묻었습니다.
베드로는 제 친구로
올해 마흔셋의 나이로 삼년전부터 신경이 말라가 마비가 되는
희귀한 병이 찾아와 속수무책으로 손도 써보지 못하고
긴 날을 외로움과 고통으로 고문같은 하루를 살다
이 여름 은하수를 넘어 보이지 않는 작은 별이 되었습니다.
목숨은 어느순간 끈을 놓으면 다시 이을 수 없이
겨우 지하 2미터의 어둠속으로 묻히며
영원히 사라지는 쓸쓸함의 짧은 거리입니다.
이제 그는 없습니다.
이제 실체가 없으니 그림자도 없습니다.
다만 추억만이 그를 기억하던 사람들의 한 켠에 남아
한 여름 그늘처럼 그를 추억하겠지요.
삶은 그렇게 절대허무한 존재로 끝나
남아있는 자에게 아픔을 주며 사랑조차
더 큰 슬픔이 되는 이별의 연습장이지요.
장례미사에 참석한 베드로의 마지막 미소는 평화로웠습니다.
그의 눈길을 따라 슬픔은 깊어지고 눈물은 뜨거워 집니다.
전화로 들려오던 목소리는 내 목을 잠기게 하고
죽음을 예감하고 그를 위로한다면서 그동안 나는
작별을 준비하는 그의 엄청난 슬픔으로 인해 위로 받고 있었습니다.
이 시를 묻어달라는 그의 유언에 난 너무 부끄러웠고
죽음 앞에 그게 무슨 부질없는 것인가 하고 목메었지만
나는 이 시가 담긴 액자를 그의 주검과 같이 묻고 왔습니다.
참으로 허무한 일입니다만 우린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삶과 작별은 공존하고 삽니다.

그를 묻고 돌아서 보는 하늘은 맑고 뜨거웠습니다.
아마 영원한 어둠속에 사라지기 전에 기억하라는
간절하고 아쉬운 마지막 빛인가 봅니다.
땀이 눈물처럼 흐르는 뜨거운 뙤약볕이 흐르는 언덕입니다.
아마 추운 동토의 땅으로 묻혀지기 전에 느껴보는
마음을 녹이는 이승의 따뜻한 온도일 겁니다.
숲은 푸르게 청청하고 매미소리도 음악입니다.
아마 그가 눈 감고도 느낄 수 있는 젊은날의 푸르름이고
이젠 들을 수 없는 마지막 자연의 소리일 겁니다.
이제 나를 비롯한 벗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물로 땅은 굳어지고
그를 추억하는 기억들이 해마다 푸른 잔디로 자랄 겁니다.
나는 그를 혼자 두고 이 언덕을 내려오지만
베드로는 우리보다 먼저 갔을 뿐이지
내게도 이 길이 낯설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진 빠진 허한 마음으로 돌아와 난 뙤약볕의 골고다 언덕을 넘어
그리스 어느 하얀 바위산. 은둔의 수도원으로 들어가
오래도록 그레고리안 성가를 듣고 있었습니다.
또 어둔 날은 가고 새 날이 되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없고 모두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일 뿐......
그는 보이지 않는 작은 별이 되었습니다.
2000.7.7일 먼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