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凉寺!
그런 연유로 해서 가깝던 선배가 산을 좋아하는지라 오래 전 맑고 때묻지 않은 오지의 산, 깊고도 아름다운 산을 추천해 달라고 했을 때 선뜻 청량산을 말해 주었고 그 산에 은거한 청량사를 알려 주었다. 그 후 오랫동안 마음엔 청량사를 향한 그리움이 해마다 갈증처럼 느껴지고 푸르게 각인 된 이름이 마음 한복판에서 청량음료의 탄산수처럼 보글거리며 마르지 않는 샘물로 솟아 오르게 되었다. 그 작은 소원이 올 여름의 휴가길에서 이루어지고 처음 청량산을 대하는 순간 오랜 숙성의 과정이 달게 익어 살얼음이 동동 뜬 겨울밤의 동치미나 맑은 식혜처럼 신선하고 시원하게 더웁고 지친 가슴을 싸하게 식혀 줄 것 같았다. 오늘 그 산과 고찰을 찾아 길을 떠난다. 경북 봉화군 명호면에 이름 그대로 청량함과 고귀함을 간직한 청량산이 있고 거대하고 빽빽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열두 봉우리 중 연화봉 기슭 한 가운데 연꽃처럼 둘러쳐진 꽃술 자리에 자리잡은 청량사가 연꽃처럼 피어 있었다.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송광사 16국사의 끝 스님인 법장 고봉선사에 의해 중창된 천년 고찰이다.
▲ 유리보전 앞 5층 석탑과 범종각 너머로 바라다 보이는 금탑봉의 자태
청량사로 출발하기 전 미리 주지스님께 하루 묵을 수 있는지를 여쭈어 보았다. 산세가 험하기도 하고 번잡한 속세와 멀게 자리한 곳이라 그 맑은 산의 새벽정취와 새벽예불에 참석키 위해선 하룻밤 묵고 싶은 데 여건이 어떤지 알 수 없었고 정진하는 도량에서 마음대로 일반인이 묵어갈 수 있는 게 아닌지라 메일로 미리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하룻밤은 묵어 가라시며 쾌히 승낙하시는 전갈을 보내 주셨다. 신새벽 집을 나서는 발길이 가볍고 흥분 되었다. 초행길이면서도 낯설지 않게 중앙고속도로를 접어 들었고 거의 혼자 넓은 고속도로를 점거하다시피 질주를 하며 탄탄대로를 달리게 되었다. 모처럼 먼 길을 떠나는 여행길은 한적했고 짙은 녹빛의 산맥을 가르며 폭염속의 여름을 지나고 있었다. 간간이 지나치는 새로운 이름의 이정표가 반갑고 낯선 고장을 들어서는 초입엔 흐드러진 부용화, 백일홍, 메리골드같은 여러 꽃이 환하게 나그네를 맞이하고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영주 시내를 벗어나니 봉화로 들어서는 35번 국도가 나왔다. 봉화라는 고장도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군 입대 후 훈련소 기간을 마친 후 자대 배치를 받아 교육대로 넘어 오니 안동 예비사를 나온 동기들이 꽤나 있었다. 좀은 어수룩해 보였지만 기골이 장대하고 과묵한 경상도 사나이로서 보기에도 인품이 넉넉해 보이는 그 친구들이 봉화 출신이였다. 도대체 봉화라는 곳은 어딜까 하는 의문에 앞서 늘 횃불을 올리는 봉화만 연상케 했던 그 고장을 들어서니 옛 고향을 들어서는 기분이다. 아직도 좁고 한적한 소 읍에 작은 학교와 관공서가 고만고만하게 자리한 채 푸른 산에 둘러쌓여 조용하기만 하다. 그래도 지방자치 후 많은 홍보와 발전으로 꽤나 알려지고 있는 곳이다. 송이버섯이 유명하지만 은어잡이 축제의 플랭카드가 맑은 시냇물과 정겨운 도로를 따라 여기 저기 걸려 있었다. 아직 수수한 시골풍경과 고향집같은 옛집들이 드문드문 마을을 이루며 스크린처럼 지나치자 불현듯 내려서 위병소를 지키던 옛 전우를 찾고 싶었다.
▲ 깎아지른 절벽에 위치한 어풍대에서 바라본 청량사 전경
봉화를 지나 봉성이란 소읍을 지난다. 인터넷에서 소개한 여행의 먹거리중 봉성의 숯불 돼지고기가 유명하다고 들었다. 일찍 오느라 허기진 점심이 되어 요기를 할 때가 되었지만 절집엘 간다면서 선뜻 고기냄새를 피우기가 마음 캥긴다. 그런 마음을 누르고 들어 선 식당은 조용하고 허름한 마을에서 참 아담하고 깔끔한 실내였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 청량사에 가는 데 고기 먹으러 왔다고 부끄러운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사이 봉화의 114를 걸어 옛 전우의 이름을 찾는다. 혹시나 하는 그리움이지만 등록되지 않은 이름이란다. 그 사이 춘양목처럼 푸르던 전우의 젊음도 중년의 사내가 되어 우직하게 소처럼 살고 있을 것 같은 그 친구는 어찌 변했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잠시 미루나무 즐비하던 연병장 시절로 되돌려 놓았었다. 소문만큼 기름진 돼지 고기가 냄새도 없이 꼬들꼬들하니 맛있다. 그리 육식을 좋아하지 않던 나도 비계를 청정한 쌈에 한쌈씩 싸서 먹는다. 내 새끼들이 저리 맛나게 먹는데 부처님도 이 어린 애비 마음 용서 하시겠지 하고 그저 흐믓하게 모처럼 꼬물거리며 먹는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쌈을 싸서 넣어준다. 선전은 아니지만 정말 담백한 된장찌게와 신선한 야채는 고기의 뒷맛을 개운하게 해 주었다.
봉성을 벗어나서부터는 좁은 이차선의 길이 안동을 향하고 길가엔 담배, 고추, 참깨, 콩밭이 푸르고 싱싱하다. 안타깝게도 고추농사가 중요하다는데 긴 장마와 급격한 무더위로 짓무름병이 번졌는지 시들거리거나 말라가는 게 많았다. 강원도만큼 산세가 험하진 않지만 산비탈로 이어진 인가가 드문 산마을이다. 한참을 달리니 드디어 그 맑고 푸른 명호강을 따라가고 있다. 은어가 사는 일급수의 청명한 강바닥이 비취빛이다. 고운 모랫벌이 잔잔하고 투명한 물살에 드러나는 산빛 또한 깊고 푸르다. 잠시 강물에 발을 담그고 싶지만 뙤약볕에 차 세울 곳도 마땅치 않고 그늘도 없이 이글거리는 폭염이 만만치 않다. 좁은 길이라 한눈 팔지도 못하고 명호강의 비경을 제대로 감상치 못한 채 운전을 해야 하는 서운함이 강을 따라 흐른다. 청량산은 산세가 수려하여 예로부터 소금강산이라 불리워지고 있으며, 영암 월출산, 청송 주왕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악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 조선시대에는 많은 선비들이 퇴계 선생의 학문을 익히고 마음의 안식처로 자주 찾았다 한다. 산을 따라 낙동강 상류의 섬섬옥수 맑은 물이 청량산을 휘돌고 아직 산은 오염되지 않아 다행이였다. 산을 들어서기 전 오래도록 산의 청량함이 살아 숨 쉬기를 바램해 본다.
2004. 8.2일 紫雲山.
▲ 가파른 경사와 비좁은 공간을 잘 활용한, 조촐한 불사가 돋보이는 청량사 공간배치
■ 여행을 시작하며 모처럼 디카를 준비하여 풍광을 찍어보았지만 그 수준과 작품이 오히려 뛰어난 풍경의 이미지를 떨어뜨릴 것 같아 오마이뉴스 장권호 기자가 찍은 아름다운 사진을 옮겨옴을 알려 드립니다. x-text/html; charset=iso-8859-1" hidden=true src=http://kims56.com.ne.kr/asf/sanhaeng.asf loo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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