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雨中산책

먼 숲 2007. 1. 26.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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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라는 친숙한 우리 이름의 태풍이 북상중이라는 일기예보에 꼼짝없이 방안에 갇혀지내는 휴일이다. 벌써 제주를 지나 호남지방은 강풍과 호우로 인해 저지대는 물에 잠기고 항구는 족쇄를 채운 어선들이 바람에 요동을 치고 있었다. 며칠 째 눅눅해져 있는 실내가 땀을 흘린 듯 끈끈하다. 누워 빈둥대던 오전을 보내고 점심엔 수제비 반죽을 했다. 아내는 다시국물을 내고 반죽을 맡은 난 오랜만에 밀가루의 구수한 냄새를 맡으며 계란을 깨뜨려 넣고 버무렸다. 수제비는 된반죽부터 시작해 물을 부어가며 질척하고 나긋나긋하게 될 때까지 주물러 찰지게 해야 씹는 맛이 있어 한참을 선풍기를 틀어놓고 반죽을 하느라 용을 써야 했다.

 

오전내내 흩뿌리고 오가던 빗줄기가 소강상태를 맞은 것 같다. 창 밖이 조금 밝아오고 산란스런 바람에 나무들이 광기어린 춤을 춘다. 모처럼 짧은 낮잠을 자고나니 저녁이 가깝다. 몸이 주리를 트는 것처럼 답답해 자주 창밖을 보다 아내에게 우중 산책을 권했다. 가까운 동산을 오르자 하니 개이지 않은 하늘을 보며 망설이고 주저한다. 일단 우산을 들고 따라 나선 산책길에 흐린 날의 바람이 시원한지 표정이 밝다. 막상 나도 길을 나서며 아랫녘에선 비 피해에 마음 졸이고 고생하는 분들이 많은데 한가롭게 우중산책이라니 그 발상이 가당치 않음을 알면서도 군데군데 고인 빗물을 피해 공원길로 향한다. 텅 빈 공원이 비에 씻겨 깨끗하고 주위가 적막하다. 빗속에서도 모감주 나무 꽃이 노랗게 피어있다. 신도시를 둘러 싼 먼 산과 외곽도시가 아주 밀착해 다가와 있어 손을 저으면 잡힐 것 같은 가차운 거리다. 하늘은 무거운 먹장구름이 떼를 지어 모반늘 꿈꾸는 무리처럼 음산한 기운으로 무서운 속도로 하늘을 밀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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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시골 생활에서 항상 장마철은 한가하면서도 마음은 불안했다. 비가 와도 우비를 쓰고 하루 서너번은 논두렁을 오가며 둑이 터졌는지 물꼬를 봐야하고 밭작물은 어디 쓰러지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했다. 비설겆이의 와중에 만나는 우중의 풍경은 때론 신선하고도 두려웠다. 장마가 한창일때는 나무가 꺾이고 골짜기 물이 넘쳐 다랭이 논이 물에 잠기는 걸 보면서 산에 오르면 멀리 강둑까지 차 오른 수위로 인해 가까운 벌판이 물바다가 되어 있어 안타깝고 근심스런 마음에 비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가뭄 끝에 온 단비가 잦아지는 우중 산책은 그야말로 한 폭의 산수화 속을 거니는 기분이다. 언뜻 비치는 파란 하늘이 맑게 개여오며 오색무지개가 마을과 마을 사이를 이어주기도 하고 산골을 따라 골안개가 퍼져 가는 수묵화 사이에서 키 큰 미루나무의 푸르름은 한층 돋보였다. 잠시 지나간 소나기에 세수를 한 산과 들의 표정은 실로폰 소리같은 싱싱한 생명의 노래를 듣는 것처럼 투명했다.

 

아직 하늘 가득한 구름과 바람에 숲과 나무들이 긴장하고 잎들이 새파랗게 질린 모습이다. 다행이 강풍이 불지않아 숲은 편안해 보였다. 산길을 들어서자 늙은 참나무를 따라 빽빽한 활엽수의 잔가지로 녹음이 어둡고 음습하다. 비를 맞은 검은 수피樹皮들로 인해 산속은 전열을 가다듬은 씩씩한 초병들의 열병식을 보는 것 같다. 바로 길 하나 사이인데 차소리와 간격을 둔 산 아래에선 개구리의 합창으로 요란하다. 이 얼마만에 듣는 반가운 소리인가. 이렇게 그리웠던 소리나 풍경은 언제나 내가 그들을 떠나와 있었지 모든 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지 모른다. 빗물 고인 웅덩이나 개울가에서 지금 한창 개구리나 맹꽁이가 꽈리불듯 목청을 부풀리며 요란하게 노랠 부르고 있을 것 같아 종아릴 걷고 물가로 가고 싶었다. 오솔길을 따라 걸으니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의 리듬이 이마에서 청명하게 느껴진다. 아직 남아있던 까맣게 익은 버찌가 길바닥에 우수수 떨어져 있고 낭창거리는 어린 나무들이 비스듬히 쓰러져 있다. 발끝에 느껴지는 촉촉함을 밟고 언덕같은 동산에 오르니 먼 산과 들이 눈 앞까지 돌진해 와 있었다. 도심의 섬처럼 남은 동산에 드니 반가운 벗과의 조우처럼 눈빛이 맑아지고 푸르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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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비가 개인 오후엔 어김없이 산길을 올랐었다. 그 때마다 산섶 사이에서 흐르는 맑은 도랑물과 비맞은 억새 숲을 헤쳐가노라 바짓단은 풍덩 젖고 종아린 날카로운 풀에 쓸려 있었다. 비구름이 지나면 산 속 여기저기서 돋아나는 버섯들, 그리고 사슴벌레들을 잡으러 보물찾기 하듯 싸리숲을 헤쳐 나갔다. 이젠 사시사철 길러지는 버섯때문에 산버섯의 존재가 잊혀졌지만 습한 장마철에 버섯을 따서 끓여먹는 된장찌개는 잊을수 없는 추억의 맛이다. 그런 생각에 몰두하며 숲속을 두리번대는 내게 아이들과 아내는 무엇을 찾느냐고 궁금해 한다. 묵은 낙엽속에서 군데군데 솟아 있는 버섯을 보여 주었다. 초가지붕처럼 봉긋한 모습이 지금도 이쁘지만 식용버섯은 아니다. 난 추억속의 숲을 더듬어 뽀얀 젖이 솟아나던 젖버섯, 청기와집 같던 기와버섯,국수타래같던 국수버섯, 갈색빛의 밀버섯과 샛노란 꾀꼬리빛으로 곱던 꾀꼬리 버섯의 맛과 향을 설명하지만 마음이 허전하기만하다.

 

별로 생경하지도 않은 버섯 얘기마져 이젠 사라지고 잊혀져 가는 멸종 위기의 추억인거 같아 마음이 아프다. 몇 백년을 내려오던 우리 삶의 모습과 환경이 불과 이삼십년 사이에 너무 많은 걸 잃어버리거나 사라져가게 했다. 눈부신 문명의 변화가 인간의 삶과 질을 편하게 하였고 나 역시 그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지만 점점 과도한 문명의 편리함에 의존하며 우린 자연이길 거부하는 것 같다.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지금은 자연을 나를 위한 장식품이나 정원처럼 생각하는 건 아니지 모른다. 산길을 돌아 나오며 가슴에 실핏줄처럼 가느란 추억의 도랑물이 흐른다. 무성하던 추억의 숲은 가슴속에서 아직 축축하게 젖어 있는데  이젠 곰팡이 핀 눅진한 얼룩처럼 느껴진다. 바쁘게 밀려가던 비구름은 어디로 갔을까. 멀리 서쪽 하늘이 개여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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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들고 나는 순환의 과정인 태풍이 지나고 나면 숲은 안정기에 들어 치솟던 푸름의 호흡을 조절하며 안으로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하며 장마동안 아물기 위한 용트림처럼 온 대지가 몸부림에 시달릴 것이다. 우리네 삶도 가끔씩 그러한 순환이 필요치 않을까?. 가슴에 쳇기처럼 막혀있는 울분이나 갑갑함의 물고를 터서 흘려 보내고, 근심과 걱정의 먹구름을 쏟아내어 조금씩 비워내야 새로운 생각과 다짐이 채워지며 한동안 그 힘으로 한 계절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흐려 있다고 종일 가두었던 무거운 마음을 끌고 나와  이렇게 우중산책으로나마 환기를 시키다 보면 마음도 개여오고 푸른 나무처럼 싱그러워지리라. 외우진 구석에 쌓아 두었던 눅눅한 생각들 꺼내어 잠시 소강상태의 하늘에 널어 놓으면 장마동안은 부패되고 썩지 않으리라. 아직 칠월의 겨드랑인 짓무르지 않았지만 습한 날들의 갈피를 들처보면 청태빛 우울이 얼룩처럼 젖어있다. 우기가 끝나는 팔월, 작열하는 태양 아래 뜨겁게 펼쳐 놓으리라. 태풍에 젖었던 한여름, 적나라한 내 생의 한조각을...

 

 

2004.7.5 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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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종기 :" 들꽃세상"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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