紫雲山의 쪽빛 호수

자화상을 지우는 봄

먼 숲 2007. 1. 2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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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을 지우는 봄

 

 

 

봄을 열고
갓 태어난 새싹을 들여다 본다
노오란 떡잎의 날개를 펴고
고개를 쳐 든 연두빛 새싹에서
내겐 흑백사진조차 없는
어린날의 자화상을 그린다

 

 

두 손 옹그리고
토실한 가랑이를 펼치고 앉아
반쯤 열린 꽃봉우리같은 입술과
놀란 사슴처럼 동그랗게 뜬
까만 눈의 백일사진을 상상한다

 

 

지금은 주름속에 함몰된 세월들이라고
잊었다 생각하고 돌이키지 않지만
아름다운 탄생의 유래를 어느날
어머님 무릎을 배고 들으면서
누구나 새싹이 되고 꽃이 되기도 했겠지

 

 

봄엔 지난 역사를 얘기하지 않는다
언 땅을 비집고 나오느라
속속들이 얼 비치는 푸른 실핏줄은
과거가 아닌 시작의 흐름이다
더운 피가 흐르는 동맥이다
물소리가 시작된 샘이다

 

 

봄엔 지난 아픔을 기억하지 않는다
산고를 얘기하지 않는 어머니처럼
어둔 자궁속의 고향을 잊은것처럼
봄은 거듭나는 사랑이기에
봄엔 꽃이 피는 순간만을 기억해야 한다
꽃이 웃는 순간도 아주 짧은 바람이다

 

 

2004.2.27일.  먼 숲

 

 

 

 

 


 

 


네덜란드의 화가 램브란트의 자화상입니다.
자신이 그린 27살의 젊은 날의 자화상과 그 후
26년이 지난 이후의 자화상입니다.

 

스물 일곱이란 밝고 당당하던 젊음에서
다시 그만큼을 살아 낸 모습은
그 삶의 배경이 어둡고 무거워 보이면서
깊은 응시의 눈빛이 슬퍼 보입니다.

 

동일인의 자화상이면서도
언뜻 보면 두 자화상의 대비가
타인처럼 확연하게 낯설어 보입니다.

 

램브란트라는 당대 최고의 화가라는 이름으로
부와 명성을 누리던 젊음에서
고독과 파산으로 이어진 노년의 삶을 살면서 
주름처럼 깊어진 쓸쓸함과 인생의 고뇌가
자신이 그린 자화상에 그림자로 남는가 봅니다.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무릇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그려내는 먼 세월의 자화상 또한
연민과 회한의 모습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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