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맑고 파란 쾌청하고 청명한 이 짧은 수식어가 부족한 가을볕이 하루종일 눈부시다 급강하하는 일교차에 초겨울인가 싶어도 아침이 지나고 오후가 되면 극명하게 드러나는 양광의 가을볕이 너무 좋다 일 내던져 버리고 단풍놀이나 떠나고 싶은 황홀한 빛의 유혹이다
가을걷이가 한창인 들녘을 지나 무서리 내린 산골이나 깊어진 계곡으로 떠나면 나도 단풍으로 물들어 잠시나마 저녁노을처럼 불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침 공기가 차가울수록 화단의 국화 향기는 짙어간다 탐스런 가을 맨드라미는 선혈이 낭자할 정도로 핏빛이다 아침마다 차창밖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가을 풍경에 취해 곧 사라질지도 모를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 . .
그렇게 가을 오후가 지나며 황금빛 햇살이 더욱 빛나는 광채를 내는 걸 보다가 문득 그러한 풍광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이 그리웠다 그리고 생각난게 Bernward Koch 의 Montagnola 헷세가 머물던 스위스의 작은 마을 몬타뇰라 헷세의 맑은 서정을 노래한 듯한 이 음악이 듣고 싶었다 현란한듯하면서도 맑고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청명한 피아노 선율의 파장이 알프스의 푸른 호수처럼 맑은 파문을 일으킨다
음악에도 색이 있고 텃치가 있다 빛의 밝고 어둠의 농도가 녹아 있기도 하고 차겁고 따듯한 체온이 느껴진다 이 음악을 들을때마다 투명한 빛의 분산과 울림으로 깊어가는 가을의 서정을 본다 눈부시게 부서지는 햇살과 차거운 바람 때론 스산한 나부낌까지 피아노 건반위로 흩날리는 음표들이 낙엽처럼 아름답다
스위스의 몬타뇰라는 아니더라도 이름 모를 산맥 어디쯤 발길 닿지 않는 어느 산골짜기에서 이 음악을 들으며 십일월을 기다리고 싶다 이미 시월의 마지막 종소리가 가깝고 짧다 밤마다 꿈결에 낙엽이 뒤척이고 쌓인다
2014년 10월 28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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