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건널목을 건너며

먼 숲 2014. 8. 26. 14:08

 

 

 

 

 

 

 

 

 

 

 

아침 출근길 , 신도시 경계쯤에 있는 건널목에서 차단기가 내려지고

 잠시 버스는 멈춘채로 빠르게 질주하는 전철을 보내느라 서 있어야 한다

그리고 수신호의 깃발이 올라가고 차단기가 올라가면 버스는 느린 출발을 한다

분단선처럼 가로막은 그 경계선의 작은 건널목에

발육이 덜 된 코스모스가 철로 길가로 버려진듯 피어 있다

그리고 건널목을 지키는 초소 앞 작은 마당엔 해매다 붉은 맨드라미가 탐스럽게 피어 난다

올해도 정성스레 가꿔 논  맨드라미가 귀풍스럽게 꽃대를 올리고 있다

가을이 오면 맨드라미의 비로드같은 붉음과 왕관처럼 피어난 용모는 가히 귀족처럼 품위가 있다

나는 잠시 버스가 정차 할 적마다 차창으로 보이는 맨드라미의 가을을 즐기며

삶의 건널목을 넘어 서울로 향했다

 

 그 건널목을 낀 철로변의 낮은 집들이 있는 마당가에도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꽃들이 한창이다

탐스런 백일홍과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봉숭아, 분꽃, 과꽃, 접시꽃, 천일홍이

꽃밭도 아닌 길가나 마당가에 울타리처럼 낮게 피어있다

담장이 높거나 지붕이 높은 빌딩의 도심밖에 있는 이 변두리의 경계엔

주인도 없는 듯 풍성하고 화사하게 저절로 피어난 꽃세상이

 또 다른 계절의 풍경이 되어 지친 마음의 위로가 되곤 한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갇혀 사는 삭막한 일상에서 아침마다 만나는 이 소소한 풍경이

이젠 잊혀져 가는 유년과 빛바랜  추억의 사진첩처럼 느껴져

나야말로 먼 기억의 건널목을 건너 행복한 시간여행속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순간이다

 

엊그제 처서가 지나고부터 조석으로 부는 바람결이 선선하다

근처 연립주택 마당엔 벌써 새빨간 고추가 멍석 가득 꾸득하니 말라가고

이르게 추수한 노르스름한 참깨가 고소하게 널려져 있다

날마다 이 건널목을 오가는 사이 계절도 건널목을 건너 가을로 접어든 것이다

스물 네시간 무의미한 듯 맥없이 살다가도 차단기가 내려진 오분도 안되는 이 짧은 찰나가

삶을 되돌아 보고 지금 나는 어디쯤인가 하는

한숨같은 숨쉬기를 할 수 있는 틈을 만들고 있다

 

세월이란 거꾸로 갈 수는 없어 앞만 보고 가야 한다지만

점점  하루를 내다 볼 수 없게 세상은 불안하고

우린 예측 할 수 없는 앞 날을  모르는 척 위태롭게 살아 가고 있다

그런 현대인의 질주 본능의 삶에서

 이런 건널목의 경계에 서서 바람처럼 달려가는 고속열차를 보내고

 잠시 숨고르기를 하며 쉬었다 출발하는 건널목은

속도 조절을 위한 필요한 문턱은 아닐까

 

인정은 낮은데서 꽃처럼 피어나고

희망은 소박한 꿈에서 시작되는 위안일 것이다

넓은 경작지 에서 자란 채소보다

내가 키운 작은 텃밭의 푸성귀에서 싱싱한 맛을 느끼듯

이젠  내 나름의 휴식터가 필요하고 

내 자신도 소중히 생각할 여유도 필요한 나이가 되었다

점점 시들어 가는 내 삶의 시간들이 빛 바랜 세월속으로 잊혀져 가는 지금

잠시 멈춰서서 또 다른 삶의 이정표는 없는 지 생각해 보고 싶다

 

차단기가 올라 간 길 건너 또 다른 마을에

어쩌면 고흐의 해바라기 같은 이글거리는 가을이 있을지도 모른다

땡땡땡 종이 을리고 파란 수신호의 깃발이 올라 간다

느린 출발이지만 어딘가로 떠나는 마음은 구름처럼 높아지리라

가을은 이미 왔는데

나는 "가을이 오면" 이란 기다림의 가정법으로

코스모스 피는 건널목에서 빠른 세월의 발목을 잡고 있다

 

 

2014년 8월 26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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