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모감주나무꽃이 핀 길

먼 숲 2010. 7. 12.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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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우두망찰 세상보기에서 :노란 모감주나무꽃이 핀 길>

 

 

 

 

 

엊그제 삼성병원에  병문안을 가기 위해 하루 휴가를 내고 오후 세시의  넉넉한 시간에 강남행 버스에 올랐다

아침 저녁으로 한강을 따라 자유로를 오가고 있었지만 버스안에서 자느라 수시로 변하는 주위의 풍경을 볼 수 없어

가끔 깨어나 언뜻 보는 강변 풍경이 새롭게 보이고 벌써 계절이 이렇게 깊어졌나 하는 낯설음도 느낀다

그렇게 졸며 깨며 보는 차창의 스치는 풍경속에서 계절은 꽃이 피고 지고 녹음이 숲을 이루다가

다시 헐벗은 채 겨울을 나면서 세월은 흐르는 강물을 따라 이곳 하구에서 먼 바다로 흘러가고 있었다

오늘은 휴가를 낸 여유로운 낮시간이라선지 졸지 않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바깥 풍경을 내다 보았다 

어느새 버스는 자유로를 들어서고 쓰레기 냄새나던 민둥산이 지금은 울창한 숲을 이룬 난지도를 지난다

처음 삭막하던 신도시가 십여년이 지나 거리마다 가로수가 우거진 쾌적한 보금자리가 되었듯이

쓰레기장이던 난지도도 세월이 지나니 철철이 꽃도 피는 아름다운 공원이 되고 휴식터가 되었다

 

오월에는 난지도 둘레길에 이팝나무인지 하얀꽃들이 서설처럼 흐드러지게 피어 하얀 꽃길을 만들었는데

오늘 차창으로 내다보니 녹두빛 도는 노란 모감주나무꽃이 탐스런 궁륭을 이루며 줄지어 만개해 있었다

도시마다 대단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부터 많이 달라진 건 조경에 따른 다양한 수종이 개량되어

옛날엔 볼 수 없었던 꽃과 나무들이 울타릴 만들거나 가로수나 조경수로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모감주나무는 초여름에 흐드러진 꽃도 좋지만 가을이면 염주가 되는 열매가 달리는 귀한 나무다

이렇게 예전엔 볼 수 없었던 회화나무나 이팝나무, 모감주 나무 같은 관상수를 요새는 쉽게 접하게 된다

대신 어린날 먼지나는 행길에 늘어선 미루나무나 무궁화 같은 추억의 가로수길은 없어지고

잘 포장된 포도위엔 프라타너스부터 단풍나무, 매화나무, 목백일홍같은 다양한 나무들이 길을 열어주고 있다

 

사실 십여년동안 출퇴근길에 자유로를 오가면서 늘 마음에 두는 길이 있었다

한 길은 난지도 산아래 저 모감주나무길 아래서 시작된 긴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이고

또 한 길은 행주산성이 가까운 둔치에 하얗게 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피는 구불구불하게 난 자전거 길이다

담양의 유명한 메타세콰이어길과는 비교될 수 없겠지만 난지도 아래에도 오리정도의 산책길에

수직의 메타세콰이어가 십여년 새에 울창한 숲을 이루며 아름답고 한적한 사색의 길로 변해 있다

한겨울엔 앙상한 뼈대만 보이는 그 길이 연녹색의 봄이 지나면 신록으로 어두운 녹음길이 된다

때론 한강의 안개가 자욱한 그 길을 지나치다 보면 그윽한 서정에 이끌려 한 번 걸어보고 싶단 생각을 한다

 통근길에 보는 그 길은 거의 오가는 사람없어 쓸쓸하고 고즈넉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시원한 저 나무그늘길을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느릿느릿 걷고 싶단 생각만 한 채

 톱니바뀌처럼 바쁘게 오가며 강 건너로 사라지는 일몰과 세월을 무심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또 마음에 두는 한 길은 행주산성이 가까운 한강 하류의 구불구불한 둔치길인데

 여름이 가까와오면 마치 소금을 뿌려놓은 듯 개망초꽃이 강변을 따라 흐드러져 피어 있어

그 가운데 길로 강물처럼 흐르며 자전거를 타는 풍경은 무척 여유롭고 서정적이다

드문드문 작은 섬처럼 버들숲이 있고 넓은 둔치의 벌판은 원시적인 풀밭이라서 정다운 시골길같다

더구나 늦은 저녁이 오면 강 건너 서쪽의 김포 벌판으로 지는 일몰과 노을은 환상적일때가 많다

멀지 않은 곳에 이렇게 멋진 길과 풍광을 두고도 마음에 둘 뿐 가지못하고 지나치며 살고 있으니

비껴가는 일상의 끝에서 때론 내 삶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지 허탈해지기도 한다

 

 제주 올레길이 길이 알려지고부터 열풍처럼 걷기여행이 번지고 있다

그래선가 나도 늘 마음에 새로운 길을 내기도 하고 알려진 명소길을 마음속에서 거닐어 본다

푸른 바다와 바람을 따라 걷는 올레길에서 다랭이 논길과 섬진강 물길을 따라 걷는 지리산 둘레길까지

맨발로 걷는 문경새재길에서 미당의 고향인 질마재길과 퇴계의 먼 오솔길까지

황소걸음처럼 느리고 여유롭게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들을 길에 묻으며 새 길을 낸다

그렇게 마음으로 떠나는 길여행에서 가끔 한숨처럼 쓸쓸한 독백을 내뱉는다

제기럴, 두 다리 멀쩡한 세월은 바람처럼 흘러가고 무릎 고장나고 허리 굽을 날 가까운데

언제 한가로이 여행길에 올라 아름다운 언덕길에서 장미빛 황혼을 바라볼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아쉬운 푸념을 하는 세월의 고갯길에 서 있으니 내려갈 준비도 해야할 듯 싶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내가 자란 마을 뒷산의 오솔길을 잊을 수 없다

가끔 혼자 올라 아픔을 삭이고 생각에 잠기던 뒷산 언덕의 허리굽은 노송과 흰 바위

큰 길에서 이어진 산길은 아버지 등처럼 편안하고 나즈막한 산줄기는 어깨동무처럼 정겨웠다

청청하던 리기다소나무 숲을 지나 논길로 가던 솔향기 그윽했던 한적하고 좁은 오솔길

나는 그 길을 걸어 가면서 내 생각을 키우고 아픔을 토닥이고 많은 상념을 마름질했다

지금 아무리 가고 싶은 많은 여행길들이 절경이고 유명하다한들 무슨 소용이랴

홀로 터벅터벅 걸으며 내 자신과 이야기 하고 살아 온 길을 반추 할 수 있는

하여 스스로 마음속에서 살아갈 길을 찾는 소박하고 정겨운 오솔길이면 족하지 않을까

그 길에 바람이 불고, 꽃이 피고, 낙엽이 지고, 새가 날고, 비가 오고 눈이 오면 좋겠고

가끔 그리운 길벗이라도 오는 길이라면 더없이 아름답고 향기롭지 아니한가

나는 오늘도 그러한 호젓한 마음의 오솔길을 내고 싶다

 

 

 

2010년 7월 13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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