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주를 내리 쉬임없이 일하다 보니 몸이 견디지 못하고 삐그덕댄다 밤샘을 하고 나면 누적된 피로가 다시 일주일을 가는 것 같고 결국 어깨가 담이 들고 근육은 굳어져 맥빠진 심신은 천근 만근이다 어느정도 일이 마무리가 된 월요일이라 출근하지않고 게으른 아침을 맞는 여유로움 그것도 월요일의 휴일은 훨씬 넉넉하고 느긋한 해방감이 든다 보름 전에 계속 어깨에 통증이 있고 해서 검진을 했더니 목 디스크가 있다고 한다 내가 생각해도 남보다 머리통이 커서 무거운 무게를 감당하기도 힘들었을텐데 그나마 쓸데없는 근심걱정과 단단한 고집으로 뭉쳐저 있으니 그 무게가 좀 무거웠을까 목뼈가 기울어 아프고 어깨가 무거운 건 당연한 이치였으리라 오전엔 한의원에 가서 아픈 어깨부위에 침을 맞고 부황을 뜨고 나니 한결 가볍다 침을 꽂은 채 잠깐 단잠을 자고 나니 몸은 가벼운데 진이 빠진 듯 기운이 없다 집에 돌아 와 점심을 먹고 나니 쌓였던 피곤이 몰아친 것처럼 잠에 빠진다 그래야 한시간, 곤하게 낮잠을 자고 나서 다시 병원엘 간다
두달 전 자꾸 생목이 오르고 공복시 속이 쓰려 위 검사를 했더니 뱃속 여기저기 염증이 시작되었다 술 담배를 않하니 스트레스가 원인이겠지만 그게 삶의 더 큰 고통일게다 한 두달 약을 먹고 괜찮아졌지만 헤리코박터 균이 죽었나 살았나 다시 검진을 해야 한다고 한다 하여 간단한 검사를 마치고 병원을 나서니 바깥은 뜨거운 염천이다 해가 사십오도쯤은 기운 한 여름의 오후 네시, 거리가 뎃상 그림처럼 명암이 깊다 중천에 뜬 태양의 열기와 빛의 밝음과 어둠의 교차로에서 선뜻 어디로 향할지 몰라 멈칫 댄다 쏟아지는 빛을 향해 손차양을 하고 어디로 가야할 지 해밝은 바깥의 동정을 살핀다 그러나 계획한 것도 없지만 한적한 거리처럼 비어 버린 마음의 공허속에서 방향감각을 잃는다 쫓기듯 일상의 톱니바뀌 속에 얽매여 살면서 늘 자유로운 일탈을 꿈꾸고 살지만 오늘 잠시 벗어난 일탈의 광장에서 나는 어디로 가야할 지 헤메고 있는 것이다 건물 아래 그늘에 서니 습한 날이 아니라선지 다행이 뻥 뚫린 거릴 건너오는 선들바람이 시원하다 바깥은 뙤약볕이 시리지만 도심의 그늘길을 가로질러 녹음이 어둔 정발산을 넘어 노모를 뵈러갈까 아니면 어제 못 간 집안 내 상가집에 가 봐야 되나 하는 의무같은 일상의 갈등이 모처럼 곤곤함에서 벗어난 한가로운 일탈을 앞에 두고 오후의 양광처럼 극명하게 대비된다
또한 길 건너엔 미술관도 있고 도서관도 있고 멋진 공연장도 있고 산 아래엔 이년전에 갔던 고전음악실도 있다 공연장 앞엔 구미를 당기는 공연 포스터들이 즐비하게 홍보를 하며 여유로운 문화 생활을 꿈꾸게 한다 방향을 틀어 뒤쪽으로 조금만 가면 그림같은 호수공원이 여름 물빛으로 시원하게 펼쳐저 있다 또한 여기서 버스 한 번만 타면 서울 한복판이고 전철 한 번 타면 인사동도 갈 수 있어 지금 전화를 걸어 누구 한가한 친구 있으면 차 한잔 하자고 불러내고 싶기도 하다 그렇게 길은 무한하고 여유는 광장처럼 넓은 것 같은데 마음은 쉬어 갈 그늘조차 없는 삭막한 사막같아져 갑자기 나는 사막 한가운데서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바람소리만 듣다 오던 옛날이 생각난다 외로움에 손전화를 꺼내 공연히 열었다 닫았다 망설이지만 누구 하나 전화 걸기가 뜨악해 보이는 마음이다 예전엔 거의 혼자 새처럼 자유롭게 때론 목적도 없이 뜬금없는 길을 떠나던 나였는데 지금은 풀어진 고삐를 의식 못하는 짐승처럼 현실에 묶여서 내 자리를 서성이며 움추리고 있다 이러한 나에 대한 무의식적인 방임은 일종의 우울처럼 삶의 입맛을 잃어가게 하는 것 같다 뭘 해도 재미없고 뭘 봐도 시시하고 뭘 생각해도 다 그게 그런거 같고 사는 게 별달라 보이질 않는다 얼마전 까지 나는 내가 남들과 달라 보이길 원했고 내 삶은 스스로 차별화한다고 생각했는데 살다보니 남과 다른 것도 없고 잘난 것도 없고 오히려 못난 게 더 많고 똑 같이 늙어가고 있지 않은가 때론 자존심마져 거추장스럽고 필요없는 오기인거 같아 평범치 못한 게 더 바보스럽게 생각되기도 한다 마치 내 삶이 애써 애둘러 먼 길을 돌아 온 것처럼 어리석고 아둔해 보이기까지 한다
집을 나오다 보니 장마때 피는 원추리와 접시꽃이 화단에 활짝 피었다 아파트 관리원 아저씨들은 무성한 나무가장이를 솎고 늦은 여름꽃 모종도 내며 김을 맨다 시원한 등나무 아래 정자에선 할머니들이 둘러앉아 심심풀이 화투패를 돌리고 공원 그늘에는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할머니들이 벤치에 앉아 아이에게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드문드문 할아버지들이 나무 그늘에 홀로 앉아 나무 의자에 등을 기대어 뻐끔담배를 피고 건널목을 건너는 시원한 나무 그늘엔 텃밭에서 솎아 낸 푸성귀를 팔려고 좌판을 준비하는 노인들도 있다 칠월의 그늘처럼 고즈넉하고 숨막히는 무더위처럼 정지되고 무기력한 풍경들이다 그렇게 시든 풍경속을 걸어 온 내가 갑자기 지금 그 속의 주인공처럼 공허하게 밴치에 앉아 있다 칠월의 무더위에 손을 놓고 졸고 있는 오후의 풍경속에서 눈부시게 따가운 햇살을 피해 나는 맥없이 나무그늘이 있는 밴치에 앉아 촛점을 잃은 채 간간히 지나가는 바람을 보고 있다 모든 의욕과 관심이 정지된 채 버려진 정물처럼 앉아 모처럼 주어진 일탈의 시간들이 쓸쓸한 그림자의 시침이 되어 수직으로 쏟아지는 칠월의 폭염속을 느리게 지나고 있었다 그것도 편안하고 외롭지 않은 마음으로 다만 눅눅하지 않다는 건조함에 위로하며 짧은 일탈의 시간들이 꽃이 지듯 적막하게 저물고 있었다 참으로 쓸쓸한 일탈이다
2010년 7월 13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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