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사진 : Dreaming sappho에서>
백로 한마리가 오롯이 서 있는 사진을 보는 순간
촛점처럼 모아지는 새 한마리가 마음숲에 내려앉았다
며칠동안 날아가지 않고 외발로 서 있는 사진속의 새 한마리가 그리워
지인에게 저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그냥 어느날 『 한동안 쉼니다』라고
휴식의 팻말을 걸고 잠시 문을 내리고 싶을때
그 마음을 대신하려고 사진을 달라고 한 속내가 깊었는데
막상 받고보니 저 새가 날아가지 않고 오랫동안 내 안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니다 , 그건 변명같은 틀린 말일 것이다
오히려 회색 공장숲속의 전선줄에 앉아있는 초췌한 새 한마리가
초록의 들판에서 여유롭고 느린 사유의 시간을 즐기는 저 새가 부러워
거꾸로 외롭고 쓸쓸한 시선으로 들판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내 마음이 백로가 되어 푸른 초여름의 벌판에서 외발로 서 있는 것이다
나도 저 새처럼 고요로히 내 안을 응시하고 싶은데
삶의 일상은 침침해지고 분산되어 또렷하게 촛점이 모아지지 않는다
무르익은 까만 오디가 툭툭 떨어지는 유월이 깊어가면
산길에 멍석딸기가 빨갛게 익어가고 주근깨가 점점히 박힌 주홍빛 산나리가 핀다
논배미마다 파랗게 거름물이 돌고 뿌릴 뻗은 모들이 고랑을 지워가고 있었다
그렇게 벌판이 초록으로 물들어가면 백로들이 그림처럼 날아와 앉았다
백로들은 떼로 몰려다니지 않고 한마리나 서너마리가 논배미로 날아와 앉기도 하지만
늘 홀로 멀찌감치 떨어져 느린 걸음으로 어슬렁거리며 먹이를 찾는다
그래선가 초록의 논 가운데 있는 백로는 고독해보이기도 하고 고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때때로 끝없이 넓다란 푸른 논배미에 고요히 외발로 서 있는 백로는
마치 푸른 원고지같은 너른 벌판의 긴 행간에서
감탄사나 의문사같은 문장 부호가 되어 초여름의 서정을 종결시키기도 했다
또한 느릿한 산책으로 긴 사유의 시간을 즐기는 백로는
안거에 든 수도승처럼 맑고 고요로운 풍경이 되기도 한다
짙은 녹음으로 어두워지는 유월은 산그늘이 마을에까지 내려와 적막하고 서늘해보인다
긴 장마가 오기전에 아직 눅눅하지 않은 숲에 들어 가끔 서늘한 그늘처럼 마음을 식히고 싶다
백로처럼 느리느릿한 걸음으로 소요하며 내 안의 시끄러움과 곤곤함을 내려놓고 싶다
한동안 월드컵의 열광속에서 환희와 아쉬움의 시간으로 시끄러웠지만 행복했다
스포츠라는 놀이가 온 세상을 손에 쥔듯 뜨거운 열정속에서 우리를 들끓게 했지만
이번엔 아쉬운 석패의 여운이 길고 그 그림자가 서늘할 정도로 냉정해지는 것 같다
잠시 뜨거웠던 마음을 식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내일을 살아야 할 시간이다
곧 칠월이 오고 습한 여름더위와 장마에 지쳐갈것이기에 이젠
외발로도 흔들리지 않고 고요로히 바람속에 서 있을 수 있는 평정심을 되찾고 싶다
사람의 몸도 자연처럼 변화가 오는지 주기적으로 내 몸에도 이상현상이 나타난다
여기저기 관절이 엇박자처럼 삐걱대고 근육이 뭉쳐 허리가 무겁다
불어난 나이살은 꿈쩍않는데 점점 입맛도 없어져 먹고싶은 것도 없지만 의욕도 없어진다
우기처럼 우울의 시간이 오는 건 아닌지 걱정이지만 스스로 심신을 추스려야 한다
다시 여름을 잘 견뎌야만 가을이 온다
내 안을 응시하는 건 더없이 필요한 휴식의 시작일 수 있을 것 같다
내 안에선 아직도 삶의 의문부호처럼 백로 한마리 외발로 서 있다
2010년 6월 28일 먼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