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분분한 꽃잎들이 아파트 문앞까지 쓸려와 보도블럭 위에 꽃수를 놓는다 차창에 쌓인 꽃비를 쓸어내리다 만개한 목련을 바라보며 아련한 향수에 젖어 본다 어쩔 수 없이 생활고의 굴레에 묶여 떠날 수 없는 몸이지만 마음은 고속열차를 타고 이름모를 먼 타향의 정거장에 정차해 있다 늘 사월이면 이런 꽃그늘같은 旅愁의 그림자가 마음속 깊히 드리워져 벚꽃이 꽃구름처럼 피어 오르면 뜬금없는 여행을 꿈꿔 본다
내 반생이 시골서 농사를 짓던 기억으로 채워져서인지 나의 봄 여행은 한가로운 상춘객이 되어 붐비는 인파속에서 가는 봄을 감상하는 것보단 멀리 한적한 시골이나 낯선 변두리 해안마을을 돌면서 흙냄새를 맡으며 그 지방의 풋풋하고 생동감 있는 봄을 보고 느끼고 싶다 산비탈의 밭을 갈고 감자를 심거나 한 뼘 넘게 자란 파릇한 마늘밭의 김을 매거나 포근한 흙을 밟으며 봄을 경작하고 한 해의 씨를 뿌리는 농사가 그리워진다
겨울내내 움추려 있다가 파릇하게 돋아 나온 봄나물이나 작은 봄꽃들 그리고 텃밭에 드물게 살아남은 돌갓이나 쪽파, 겨울 시금치 같은 싱싱한 푸성귀를 보면 군내나던 입맛이 돌고 저절로 마음도 파릇해져 봄풀처럼 녹색 미각이 살아난다 봄에 솟아나는 모든 여린 새싹과 꽃은 독을 품지 않은 순한 풀같아 파릇한 봄의 새싹을 보면 나는 채식동물처럼 식욕이 당겨선지 녹색에 집착하곤 한다 지천으로 들판에 솟아난 쑥이나 달래, 냉이, 민들레. 돋나물같은 봄나물을 보면 쌈장 하나에 여럿이 둘러 앉아 싱싱한 나물을 비벼먹는 꿀맛같은 들밥이 생각난다
사월이면 그렇게 염소처럼 풀빛을 찾아 논두렁 밭두렁을 쏘다니거나 정거장도 없는 완행버스를 타고 시끌벅적하니 정겨운 시골 오일장에 들러 여기저기 이름모를 마을에서 채집한 농산물이 쏟아져 나온 난장이 보고 싶어진다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들이 이고 온 보따리를 풀어 소복하게 늘어놓은 소담스런 푸성귀나 산나물 포구가 있는 장엔 싱싱한 생선과 어물들이 바닷내음을 풍기고 있어 살아있는 바다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가끔 만나는 너무 착하고 순하게 생긴 우리의 누렁이나 백구같은 강아지들을 보는 것 그리고 여기저기 푸짐하고 구수하게 보이는 먹거리나 주전부리를 먹어보는 일 이런 소소한 시골장의 재미와 넉넉한 인심을 느린 걸음으로 보고 느끼고 싶다
허나 이런 봄여행은 마음뿐, 여직 여유롭게 떠나지 못했다 목적지를 두고 떠나는 여행은 하루의 일정과 계획이 짜여저 있어 시간에 쫓기거나 얽매이기 쉽다 그런 계획적인 여행이 아닌 발길 닿는대로 떠나고 머물고 싶은 곳에서 넉넉한 여유를 즐기는 방랑적인 구름나그네의 봄여행을 꿈꿔 본다 이런 생각들이 나에겐 언감생심의 이야기지만 해마다 봄이면 마음으로나마 봄여행을 떠난다 어쨌든 내게도 방랑적 기질이 있는지 한 때 혼자 많은 곳을 떠돌아 다녔다 그래선가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나는 신선한 인연들이 추억이 되고 그리움이 되었다 이 아름다운 봄날, 멀리 지리산 자락이나 섬진강가에 사는 그리운 벗 하나 있어 햇차를 덖었으니 내려와 향기로운 봄을 우려마시자는 반가운 전갈이라도 받으면 행복할 것 같다
봄은 깊어져 오월로 가는 데 아직도 아침 저녁이 초겨울처럼 쌀쌀하다 올해는 세상살이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인데 날씨마져 여전히 이 모양이다 그래도 봄은 봄, 꽃이 피고 꽃이 지고 있다 봄은 아스라히 그리움이 피어나는 계절이다 모든 게 다 그리워진다 그리운 마음으로 사월의 노랠 불러 본다
2011년 4월 19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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