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아침 출근길에 라벨의 "볼레로"를 듣는다
젊은날 이 곡을 처음 들었을때
반복되는 리듬의 몽롱한 선율에 마치 홀린 듯 빠져 들었다
그래선가 잠시 일했던 아현동 사거리에 볼레로란 커피집 있어
친구를 만나면 암갈색 커튼이 드리워진 그 곳을 몇 번 찾았다
묘한 리듬의 이 곡 덕분에 그 때는 라벨을 참 좋아했다
오늘 눈쌓인 들판을 지나며 이 음악을 들으니, 문득
새하얀 옷을 입고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터어키의 수피들이 추는 세마춤이 생각난다
가장 숭고한 의식처럼 흰옷을 입고 원무를 추며
몰아의 경지로 드는 춤을 생각하며 그 춤에
나는 뜬금없이 라벨의 볼레로 음악을 접목시켜 본다
볼레로의 리듬에 따라 무복을 입은 수피들은
느린 원무의 흐름에서 점점 빠르고 강렬하게
마치 홀릭 상태로 빠져드는 몰아의 경지에 이르러
잠시 혼절하듯 신과의 교감에 빠지는듯한 상상을 해본다
아니 내가 그렇게 볼레로에 맞춰 빙글빙글 돌면서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환희와 몰입의 경지로 빠져 들고 싶어진다
요즘 자주 폭설이 내린다
깃털처럼 가벼운 눈이 소리없이 내려 새하얀 세상으로 바꾼다
폭설이 내려 바깥세상과도 두절된 산골
새하얀 침묵과 눈부신 고요만이 백야처럼 펼쳐진 설경을 보면
나는 순백의 홀릭상태에 빠지고 싶어진다
그렇게 설경은 가장 아름다운 몰입의 풍경이 된다
먼 바닷가로 나가 창가에서 바다에 퍼붓는 눈을 본다면
그 순간 나를 잊는 몰아의 경지에 빠질 것 같다
마음에 아득하게 눈이 내린다
눈내리듯 부드럽던 볼레로의 리듬이
점점 눈보라처럼 빠르게 세상을 휘감는다
2011년 1월 14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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