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날씨가 칼날처럼 차갑다 새하얀 설원에서 바라보는 빛의 강도는 얼마나 눈부실까 고글을 끼고 날렵하게 미끄러지는 스키어의 하강이 솔개처럼 느껴지는 계절이다 한파에 서너겹 옷을 껴입고 오종종거라며 출근하는 아침이 부담스럽다 한강의 물빛이 푸르고 두꺼운 살얼음이 얼어 군데군데 섬처럼 떠 있다 매년 일월이면 우리 일의 특성상 한가해서 출근해 빈둥빈둥 노는 시간이 많다 이런 여유로운 틈이 생기면 공연히 긴 겨울방학이 그리워 차라리 따듯한 아랫목에서 배깔고 편안히 뒹굴대고 싶다는 게으른 생각만 든다
하릴없이 눈부시게 빛나는 바깥의 설경을 내다보다 혼자 이어폰을 끼고 라프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듣는다 항상 한파가 밀려오고 폭설이 내리는 겨울이면 나는 이 음악이 그리워진다 눈부시고 강렬한 피아노의 터치와 맑고 차가운 서정의 이 음악을 들으면 러시아의 무겁고 음울한 겨울과 눈부신 시베리아의 설원이 그려지고 거대한 유빙이 떠가는 북극의 빙하와 황홀한 오로라를 상상하게 된다 그렇게 라프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듣고 있으면 깊고 아득한 겨울속의 명징한 서정에 빠진다
피아노소리가 영롱한 음악속에선 극한의 추운 북극대륙이 푸른 별 쏟아지는 끝없는 설원이 되고 유리처럼 투명한 얼음깨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그리고 길도 없는 막막한 눈밭에서 착한 순록처럼 겨울을 견디노라면 봄은 천천히 쇄빙선처럼 유빙의 베링해협을 건너 우리에게 올 것이다 오늘처럼 한기가 창창한 겨울 날 라프마니노프의 음악을 들으면 깊은 가슴속에선 얼지않고 흐르는 맑고 푸른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현란하게 춤추는 피아노 음표의 선율이 몰아치는 눈보라가 되기도 하고 빙하에 반사되는 빛의 유희처럼 눈부신 서정이 반짝거려 나는 유리창에 두껍게 낀 성에에 호호 입김을 불어 겨울의 낭만을 녹여본다 한 때 내게도 러시아의 문학과 음악, 그리고 순백의 겨울이 있었다
2011년 1월 8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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