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끝의 여백

가을 정물 2

먼 숲 2008. 9. 23. 10:42

 

 

 

 

 

 

 

 

 

 

 수 채 화 / 강 연 균 화 백

 

 

 

 

 

 

 

 

 

 

 

 

  

 

 

  

 

 

 

 

                 한 소쿠리, 한 바구니, 한 무더기, 한 다발, 한 아름....

 

                 가을은 그렇게 수량으로 헤아리지 않고  정다운 마음으로 가늠할 수 있는 풍성하고  넉넉한 여유를 모두에게

                 나눠 주고 싶다. 그러나 살수록 인색해지는 타인에 대한 나의 무관심은 갑옷처럼 마음을 닫는 경직된 두께로

                 굳어져 간다.  때가 되면 영글어 저절로 툭툭  떨어져 자신을 송두리째 보시하는  가을 열매의 무한한 인정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나눌 줄 아는 인정의 미학은  숭고한 종교의 근원이기도 하고  마음을 여는 쉽고도 가장

                 어려운 실천일 것이다.  자연이 나누어 주는 고귀한 빛과 공기와 바람과  비와 어둠과 그 모든 시간의 변화속

                 에서 지상의 모든 식물과 나무는  무한한 감사의  보답으로  우리에게  달고 고소한 살과 향기와 다음 시간을

                 여는 씨앗을  무상으로 주고 있다.  항상 공짜로 받기만 한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나눠 주고 있는가. 해밝은

                 가을 햇살과 마른 바람에 여물어 가는 해바라기 아래서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하니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수전노일 뿐이다.  평생을 탐욕으로 살다가 그것을 자랑처럼 늘어놓고  떠나는 내 인생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가난하다고  불평하며 어리석게 탐욕을  부여잡고 살것이다. 소담한 가을의

                 정물화를 보면서 부질없이 사설이 길었다. 


                 한 소쿠리, 한 바구니, 한 무더기, 한 다발, 한 아름...   이러한  넉넉한 수식어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 가을

                 누군가에게 무엇이든   한 아름 사랑과 인정을  나눌 수 있다면 저절로 행복해질 것이다. 또한 만물이 풍성해

                 지는 가을날에 생각해 보는 청빈하다는 말의 의미는  얼마나  아름다운 철학일까.  가을이야 말로   풍요로운

                 들녘에 서서  빈 손과  빈 마음에 전해져 오는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싶다.   황금빛 햇살과 산산한 들바람이

                 출렁이는 가을 날 오후,  우린 살아 있어서  햇살을  환하게 맞이한다는  행복감보다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야

                 하는데 점점  그러한 감사의 마음을 잊고 산다.  물질의 풍요가  모든 행복의 잣대를 기준하며 정신의 풍요를

                 삭막하게 황폐화시키는 요즘, 작은 바구니 안에 그득 담긴 과일이나 푸성귀를 나누고  밝은 햇살처럼 반가운

                 인사와  마음을 나누는 하루를  산다면  세상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꼭  청빈락도를  꿈꾸지 않아도  이 가을

어느 하루 말간 가을 햇살 한 줌에 행복해 하는 청빈한 마음을 갖고 싶다. 

 

                                                                                                                             2008.9.22 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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