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끝의 여백

오치균 화백의 "봄"

먼 숲 2009. 3. 17. 16:37

 

 

 

오치균이 손가락으로 물감을 으깰 때 재료가 육체와 섞이는

그 확실한 행복감을 나는 짐작할 수 있다

 재료를 장악하고, 그 재료를 육체화해서

재료를 마소처럼 부릴 수 있는 자만이 예술가인 것이다

언어는 기호이고 또 개념인 것이어서

나는 오치균이 색을 부리듯이 말을 부리지는 못한다

그래서 나는 오치균의 손가락을 대책 없이 부러워한다

손가락으로 색을 바르는 행위는

세계의 사물성과의 불화일 터인데

 그는 그 불화의 흔적을 남기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 흔적들이 모여서, 시간의 지속성

미래에 도래할 새롭고 낯선 색깔의 흐름을 보여줄 때

그의 화폭은 아름답고 강렬하다

 

 - 김훈, '무너져가는 것에서 빚어지는 새로운 것' 중에서

 

 


 

 

 

 

 

 

 

 

 

 

 

 

 

 

 

                                                       <오치균 화백의 그림 Spring Scenes 에서>

 

 

 

봄속으로 떠나간 버스는

 

산모롱이를 돌면서

 

뿌연 흙먼지속에 뒷모습을 감춘다

아슴거리는 봄의 기억들은

그렇게 떠난 세월속에 가려진 아련한 그리움이다

 

봄꽃들은 메마른 시간속에서 피어나서일까

마치 파스텔의 고운 입자처럼 건조하고 화사하다

어느덧 봄의 풍경들은

오치균 화가의 손끝으로 뭉개진 수만번의 붓질처럼

기억의 덧칠은 몽환적이고 부식되어 간다

 

봄은 모래알같은 편린의 조각들이 점묘되어

마음속에 자리한 만다라의 꽃수를 놓고

 지워지지 않는 꿈속의 고향이 된다

 

 

2009.3.19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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