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내 마음의 연못

먼 숲 2008. 6. 1. 13:12

 

       

       

            

       
       

       

      어느덧 계절은 초하로 접어 들고 유월의 물목에 이르렀다

      음력 오월단오가 가까와 오면  물가에 창포가 검푸르게 윤기가 흐르고

      용두레로 물을 푸던 연못은 모내기가 끝나 작은 호수처럼 찰랑거렸다

      그러면 풀섶에서 놀던 알록달록 무당개구리들이 적막을 깨고

      첨벙하고 둠벙으로 다이빙을 하여 유유히 헤엄을 치다

      중간쯤에 이르러 네 발을 부채살처럼 펼친 채로 평형을 이루며

      부유하는 꽃송이처럼 고요로이 떠 있었다

      어쩌다 하늘과 물과 구름과 수평을 이루고 있는 내 그림자를 보면

      개구리들은 말끄러미 나를 쳐다보고 눈을 깜박거렸다

       

      나는 잠시 꿈결에서 내 허파 옆에 부레가 있는 민물고기가 되어

      잠자리 날개같은 아름다운 지느러미를 천천히 흔들며

      수초사이를 숨박꼭질 하며 연못가를 빙빙 돌기도 하다

      물풀사이에 숨은 물방개나 장구벌레를 만나면

      서로가 놀라 죽은 듯 수면위로 떠 오르곤 했다

      간간히 산골짜기에서 내려 온 바람이 살랑거릴적마다

      부들이나 무성한 물풀들이 하늘하늘 춤을 추고

      그때마다 물살에 파문이 일어 메아리처럼 둥글게 퍼져 나갔다

      유월의 눈부신 햇살 아래 노란 미나리아재비꽃과 보랏빛 붓꽃이

      연못에 데칼코마니 물무늬를 그리는 오후

      개울둑에 우뚝 선 미루나무 아래선 긴 그림자가 졸고 있었다 

       

      금새 유월이 온 것처럼 지금 절반을 넘게 내 생의 강을 건너 온 거 갔다

      그 사이 물굽이를 이루며 흘러 온 물살의 호흡은 잦아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이면 유영의 강가에 장미빛 노을도 깊다

      이젠 천천히 서쪽 하류를 향해 흐르다 보면 피안의 언덕에 다달을 것 같다

      엊그제 모내기를 마친 다랑이 논 가득 산그늘이 저문 사진을 보다

      문득 내가 홀로 사색에 잠겨 앉아 있었던 고향의 연못 풍경이 그리워졌다

      신록처럼 푸른 날 뻐꾸기 우는 산골짜기 논에서 혼자 일하다 땀을 식힐 때면

      맨 윗배미 논에 붙은 연못가에 앉아 물속에 그려진 투명한 수채화를 바라보았다

      막막하던 시절이였지만 거기 앉아 있으면 잠시나마 평화로웠다

       

      수십번 꽃이 피고 지며 산빛이 변하며 마음의 연못을 떠나와 있었지만

      나는 지금 그 연못에 피던 물옥잠이나 노랑어리연꽃같은 수생식물이 되어 

      흔들림없이 고요히 뿌리내린 채 세상을 한가롭게 부유하고 싶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기억속의 연못 풍경이지만 산벚나무 아래

      까맣게 익은 버찌가 꽃처럼 떨어지던 유월의 물가에 앉아

      지친 맨발을 담그고 물보라 이는 시원한 물장구를 치고 싶다

      산과 구름과 하늘과 바람을 담은 내 작은 호숫가에서

      가끔 은하수를 건너다 물속에 빠진 낮달을 건지거나

      귀족같은 황금잉어가 되어 맑은 수심을 헤엄치고 싶은 유월

      내 마음의 연못엔 아직 버들치같은 오색영롱한 추억이 살고 있다

       

      고향을 떠난 스무살 이후로 내 마음의 지도에서 방치되고 지워졌던 연못이

      세월에 무너져 내려 마른 웅덩이처럼 흔적만 남아있는 것 같다

      메워진 흙을 치워 내고 막힌 샘을 뚫고 물도랑을 쳐야겠다

      샘물은 퍼내야지만 막히지 않고 새 물이 고인다

      욕심과 살아남으려는 경쟁으로 함몰된 마음을 비우고 샘의 원천을 살려야 한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삶의 퇴적물을 퍼내고 샘물같은 활력소를 찾아야 한다

      퍼내도 항시 마르지 않던 옛 고향의 연못처럼 내 마음의 연못에도

      물길이 다시 돌아 물고기가 살고 수련이 꽃수를 놓았으면 좋겠다

      연못 가득 구름과 물풀과 바람이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신록의 아른거리는 물그림자를 그려내면 좋겠다 

      산바람이 불적마다 포플러 나무잎이 은어떼처럼 반짝이는 유월이다 

       

       

       

       2008 .6 .1 일.   먼   숲

       

       

         

      

 

 

 

   

  

      

<사진: 블러그 우두망찰 세상보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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