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처럼 맑은 아침 해가 높다란 앞산 봉우리를 넘고 밤나무 숲에서 매미소리 요란하다. 떠날 채비를 하면서 잠시 호두나무 그늘에 앉아 푸른 동강의 아침을 건너다 보는 사이, 민박집 이웃 외양간에서 뼈마디 앙상한 노모가 암팡지게 살이 오른 암소를 몰고 나오신다. 종종거리며 힘겹게 가는 주인 발자욱을 한 발 앞선 암소는 즐거운 듯 걸음이 가볍고 힘차다. 밖을 나서며 꿈벅이는 암소의 커다란 눈망울이 동강의 강물처럼 맑다. 비탈진 산자락을 향해 스무발자욱쯤 가다 무릎이 아파 쉬는 주인의 보조를 맞춰 암소는 유순하게 꼬리 치며 멈춰서서 기다린다. 그렇게 쉬며 가길 몇차례, 숨을 고르며 겨우 언덕배기 밤나무 그늘에 소를 매고 노모는 찬찬히 자갈길을 내려 오신다. 반 쯤 내려와 들깨밭머리에 이르자 쪼그리고 앉아 목줄에 건 손전화를 꺼내신다. 바람결에 엿듣자니 아들네에 전화를 하시는 모양이다. 먼 산골짜기의 경계를 허물며 첩첩산골 노인들까지 아무곳에서 소통할 수 있는 문명의 이기인 손전화의 위력에 새삼 놀랍다. "아침 먹었냐". " 언제 내려 오냐". "우리집 강냉이는 벌써 다 여물어 내려오면 다른집 강냉이를 먹어야 할 듯 하다". "약도 조금 남았다" "잘 지내고, 강냉이 굳기 전에 애들하고 언제 내려 와라". 조분조분 전화를 하시곤 힘없이 미루나무 위를 지나는 흰구름을 올려다 보신다. 간간이 산들바람이 강자락을 지나며 흐드러진 달맞이꽃을 깨우고 멀리 강변에선 레프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의 서두름이 소란스럽다. 되새김질에 열중한 암소는 시끄런 매미소리에도 아랑곳 없이 툭툭 꼬릴 치며 파릴 쫓고 암록으로 무르익은 동강의 팔월은 구름따라 느리게 흘러간다. 속절없이 굽이친 세월의 소용돌이가 어라연에서 여울지고 여름은 조용히 깊어간다.
2007.8..7 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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