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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아니지만 젊은 날 한때 나는 늘 어머니와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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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랬다. 어머니에게 서러워 독기를 품고 비수를 들이대며 대들고 반항하며 가난을 원망했다. 내가 아픈만큼 어머니도 아플거란 걸 빤히 알면서도 내가 견뎌내야 할 숙명적인 아픔을 누구에게 퍼 부울 수가 없었다. 당신이 감당할 수 없는 나의 성장이 힘겨워지면 내 안에 자라는 파릇한 희망의 싹을 냉정하게 분질러 놓는 것 같아 그렇게 잘려지는 내 희망의 싹을 버리면서 혼자 몰래 뒤돌아서 많이 울었다. 그러면서 종내 욕심을 포기하고 체념하는 것을 스스로 터득하던 열일곱의 나이에 그렇게 순종하는 것이 효도였겠지만, 아마 어머니도 숨어 울던 나만큼 아파하셨을까. 살아남기 위해서라지만, 당신의 목적을 위해 고집스럽고 매몰차게 앞으로만 나가는 그녀가 족쇄처럼 내 인생을 옥죄는 것 같아 언제나 지긋지긋한 가족이란 굴레를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하곤 했다. 그러나 나만을 위해 도피하려는 끝없는 갈등을 겪으면서 벗어날 수 없는 모정의 고리에서 젊음은 방황의 골로 깊어지고 끝내 사슬을 끊지 못하며 내 꿈을 접어가는 나약한 내가 무척이나 미웠다.
이제 깊은 질곡의 세월이 흘러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에 서 있다. 내가 자식을 둔 아비로서 다 품을 수 있으리란 생각과 달리 녹녹치 않은 현실을 버거워하고 있다. 점점 사는 게 힘들어질수록 가끔 난 어리석게도 오래 전 일들이 녹슨 못처럼 가슴을 찌른다. 내게 조금만 힘을 주고 길을 가르쳐 주었다면, 아니, 내가 가고 싶어하는 길을 가로막지 않았다면 이 나이에 이렇게 초라하지 않았을텐데 하는 원망스런 마음이 고갤 든다. 내 탓이 아니라 결국 만만한 어머니 탓으로 돌리는 속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니 나도 자식에게 부끄럽기만 하다. 어느 누구보다 어머니의 고생과 뼈저린 아픔을 알면서도, 적어도 나는 어머니처럼은 살지 않겠다고 입술을 깨물었으면서도, 못나게도 나이 오십에 사는 게 힘겹고 허망하다 생각되면 아직도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잘근잘근 껌씹듯 씹어대니 어머닌 내가 뱉어 낼 수 없는 단물 가득한 껌이란 말인가. 문득 신경숙의 글을 읽다가 삼키지도 못하고 우물거리던 한탄같은 껌을 다시 씹어댄다. 이젠 단물빠진 밍밍한 지금의 삶의 맛에 길들여져야할텐데 난 사탕빨듯 과거의 오색왕사탕을 우물거리고 있는 것 같다. 죄 받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어린애처럼 이젠 품을 수 없는 새 가슴같은 어머니가 아직도 나를 품어주길 바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부끄럽다.
2007.9.5 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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