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읽는 詩

가을 볕 / 송 수 권

먼 숲 2007. 1. 2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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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1

 

 

  

 『 가을 볕 』

 

                             송 수 권

 

 

  여름 장마에 누습이 든
  능화판 문양의 비단 표지 좀슬은 책들을 꺼내놓고
  곰팡이 얼룩을 지우며
  가을볕에 책을 말린다

  첩첩 산중에 흰 구름이 일 듯
  한 장씩 책장을 넘길 때마다
  행간들에서 소슬한 바람이 일고
  캄캄한 묵향이 코 끝에 시리다

  축축하게 구겨진 옷가지들을 빨아 널 듯
  내 영혼 한 숟갈 물에 풀리는 표백제처럼 바래지는 한 나절은
  어초장 산 구비를 휘돌아나가는
  섬진강 물줄기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당가 감나무 떫은 감들도 단물이 들대로 들었는지
  벌써 뺨들이 붉다

  이 가을엔 농부들이 거피한 알곡들을
  지붕 위에 널어 말리듯이
  나도 가을볕에 나와 거풍(擧風)을 하고 섰다
  장악원 악공들이 여름내 녹녹해진 북 가죽 끈을
  소리 없이 죄듯이

 

 

gg2

 

                                                                                            <수채화 서 기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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