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끝의 여백

오딜롱 르동

먼 숲 2007. 1. 2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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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텔빛으로 만나는 그림 <오딜롱 르동>
 
 

 

봄이라설까, 화사한 파스텔빛의 그림들이 그리워진다. 봄에 어울리는 인상파 화가의 그림들을 다시 보고 싶다, 그 때도 사월의 봄이였다. 오래 전 베란다마다  빨간 제라늄과 튜울립, 노란 수선화가 밝은 햇살을 받고 있었던 유럽의 여행길에서 지친 노정의 끝은 프랑스였고 귀국을 앞두고 오르세 미술관을 찾아 꿈에 그리던 인상파 화가의 많은 그림들을 보았다. 그런데 꿈에 그리던 것들을 보는 것은 오히려 더 꿈결처럼 느껴져 그 기억들은 실감할 수 없는 환상의 빛이 되어 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미술관에서 본 그림보다  화집을 통해 본 것이 더 세밀하고 오래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반복되어 온 학습효과이거나 바쁜 여정속에서 오는 짧은 여유와 여백에서 본 느낌의 한계일 것이다. 너무 많이 전시 된 그림들을 마치 꿈을 꾸듯 십여미터의 거릴 두고 줌 렌즈가 들락날락하듯 스치는 마주침에서 평생 볼 수 없는 명화들이 기억에 인화되지 못하고 몽환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염원하던 것, 기다리던 것을 마주치면 너무 놀라 오히려 그 실체를 잊어 버리고 그 그림자만 잡고 있는 그런 경우처럼 난 오직 고호, 고갱, 르노와르, 세잔느... 그 많은 화가들의 그림 앞에서 아련하게 그리워 하던 환상의 꿈을 깨고 있었다. 그 이후 한동안 그 여행의 추억마져도 아득한 거릴 두고 어지러운 삶의 일상에서 살고 있었다.

 

요즘 여러 칼럼을 나들이 하다 심심찮게 그림들을 마주치게 되어 황폐해지고 삭막해져 가던 감성을 가끔 추수리게 한다. 그런 계기로 그림에 대한 수필을 읽다 먼저 소개한 " 마그리뜨" 에 이어 "오딜롱 르동" 이란 새로운 화가를 만나게 되었다. 어떤 그림인줄도 모르고 흠모하던 화가가 좋아한다기에 호기심으로 찾아 본 르동의 첫 그림은 파스텔로 그린 "베아트리체" 였다. 드가의 그림에서 본 화사한 파스텔화와 다르게 그의 색감은 건조하면서도 신비스러워 사월에 날리는 꽃가루처럼 메마른 마음의 캔버스에 묻어났다.

 

르동의 그림은  1880년 색채를 쓰기 전까지, 이른바 "검은색" 시대로 칭하는 1870년대는 형이상학적인 자신의 열망을 표현하면서 문학적이고, 환상적인 주제를 목탄으로 그린 그림에서 베아트리체 이후의 파스텔화가 주조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조용한 이끌림으로 오는 "베아트리체" 나 "감은 눈", "The Golden Cell"의 인물들은 순교자의 모습처럼 숙연하고 하얗게 태운 정념의 그림자만 남아 순결하고 소박한 색감으로 다가와 잊혀지지 않았다. 파스텔에서 느끼는 건조함이 그가 그린 신화나 문학적 주제를 들뜨게 하거나 강조하지 않고 차분한 옛얘기로 전해져 왔고 르동 그림의 상징은  이 봄 꽃가루처럼 날아와 오히려 은은한 詩畵처럼 느껴지게 한다. 창문을 열면 온 산과 들이 르동의 그림처럼 화사한 파스텔톤의 캔버스다.


 

 

2004.4.15. 지 중 해


 

오딜롱 르동 (Odilon Redon 1840 ~ 1916 프랑스)

상징주의 회화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며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오딜롱 르동은 19세기 낭만주의와 20세기 초현실주의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킨 꿈의 화가라고 평가된다. 그는 19세기 중반의 많은 유럽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동양 미술, 특히 일본 목판화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작품 세계는 꿈의 특성을 지니기도 하는 무정형의 유동하며 변하는 색채로부터 창조된 꿈의 세계였다.  

 

인상파의 외면적 현실묘사에 동조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한 보이는 것의 논리’를 사용하려는 환상적·상징적 경향의 것으로, 일종의 쉬르리얼리즘의 선구적 입장에 서는 것이었다.  1900년이후에는 주로 유화와 특히 파스텔화에 심취하였다.  말라르메가 르동을 가리켜 “결코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빛에 의해 기괴한 비극성을 생활에 반영시키고 있는” 화가, “실존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신비를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는 순교자”라 표현한 것은 르동에 대한 최대의 찬사라 할 수 있다. 회화에서 상징주의 운동 전체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진보적인 경향에 영향을 주었는데 거기에는 르동만큼 중심적인 인물은 없다.

 


 

Head of a Martyr, 1877, charcoal, Rijksmuseum Kröller-Müller. 110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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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Mademoiselle Jeanne Roberte de Domecy
1905; Charcoal


 

르동은 문학 작품과 관련된 작업을 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1882년에 그린 [에드가 알렌 포우에게]라는 6점의 석판화이다. 이 작품은 이 6점 중의 하나이다. 미국 시인 포우는 이미 33년 전에 죽었으나 그의 고뇌에 찬 생애와 "모든 확실성은 꿈에 있다"라고 이야기한 그의 악몽이나 환상적인 글은 당시 프랑스 문단에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눈이란 전통적으로 영혼을 반영하는 마음의 창으로 생각되어 왔고, 양심의 형태이기도 하다. 하늘에 둥실 떠있는 원구의 경우는 태양이나 광선, 생의 의미와 관련지어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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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yeux clos (Closed Eyes),1890;

Oil on canvas mounted on cardboard, 44 x 36 cm

 

<감은 눈>은 화폭 전면에 드리운 수평선 너머에서 눈을 감은 얼굴이 크게 형상화되어 나타난다. 르동은 환상적인 세계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매끈한 사실적인 재현과는 상당히 다른 양식을 보여준다. 대범한 붓질로 그려진 어렴풋한 이미지는 감은 두 눈의 인물을 통해 보이지 않는 꿈의 세계를 연상시키고 있다.

 
 

 
The Fall of Icarus, pastel, The Rothschild Art Foundation. 111KB


 

 
Pegasus, 1900, pastel, Hiroshima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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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tical Knight (Edipus and the Sphinx)
1894; Charcoal embellished with pastel

 

 


 
 
The Winged Man (The Fallen Angel), before 1880, oil on card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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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ruidess
1893; Charcoal embellished with pastel


1890년대는 상징주의 물결이 문학, 음악, 미술 등 예술계 전반을 지배하던 시기이다. 또한 여러 예술 장르들이 고유의 경계를 넘어 상호 침투하고 영향을 주고받던 때이기도 하다. 회화에서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넘어서, 생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주관적인 그림을 지향하였다.  르동은 종교적이고 신비적인 소재들을 즐겨 그렸는데, 기독교, 그리스와 로마 신화는 물론이고 불교와 이신론의 느낌을 주는 주제까지 화폭에 담았다.  빛과 어두움의 대조, 환상적인 색채 등이 신비로운 분위기, 초현실적인 세계로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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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1905년, 종이에 파스텔, 97 x 73cm

 이 그림에서처럼 색조가 좀더 밝고 낙관적인 분위기로 바뀐 것은 1900년 이후로서, 그때부터 캔버스는 매우 다채로운 색채로 풍성해졌다. 나무의 이미지는 천상의 분위기를 떠올릴법한 배경의 현란하고 화려한 색채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대조적인 분위기는 지장보살의 화려한 다채색의 법의와 움직임 없는 보살의 묵상 자세, 내리깔고 있는 두 눈에서 다시 한번 환기된다.  이 파스텔화는 르동의 작품들 중에서도 완성도가 높은 작품에 속하는 것으로 르동이 파스텔이란 매체를 얼마나 능숙하게 쓰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그림에 나타난 그의 파스텔 테크닉은 드가의 파스텔 기법에 필적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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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껍질, 1912년, 종이에 파스텔, 52 x 57.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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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emones in a Jug
              Pastel; The Ian Woodner Family Collection,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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