休 식과 노동의 중간 시간 새벽. 수면에서 깨어나 아직 움직임에 들어가지 않은 이 시간은 결백한 정기를 흡입하며 지나온 밤을 결별하고, 소모의 활동을 예비하는 시간이다. 정신은 맑고 의식은 투명하다. 그러나 이 시간은 비인간의 시간이다. 호흡의 오염이 시작되지 않았다는 뜻에서 비인간이고 움직임으로 공간이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뜻에서 비인간이며 활용되는 시간이 아니므로 비인간의 시간이다. 인간이 없다는 뜻에서의 비인간. 공간만 있는 시간. 채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공간. 그 공간은 정적과 고요로 정화된 대기와 순화된 대지의 생산적인 기운이 채우고 있다. 깨어난 사물의 속삭임만 들린다. 시작을 앞두고 짧게 하루를 사색하기에 적당한 것이다. 비어 있으면서도 충만한 시간, 새벽. 색깔로 치면 은회색이고, 형태로 치면 부정형일 것이다. 고요와 명상과 은회색과 부정형. 나는 강승희의 새벽연작에서 이것들을 본다.
새벽에 일어나고자 하는 이는 그렇게 자신을 비울 일이다. 자신을 비운 이라면 그렇게 새벽에 일어날 일이다. 새벽을 사랑할 일이다. 충만하게 비워지도록. 영혼은 사유의 강을 따라 흐르며 스스로를 비워 새벽을 연다. 우리가 진정으로 소망하는 새날 새 새벽을
( 김정신의 블러그에서 김정신님의 글 )

새벽 2005 - 강승희

새벽 2007 - 강승희

새벽 2014 - 강승희

새벽한강 97110 - 강승희

새벽한강 97104 - 강승희

새벽남한강에서 99119 - 강승희

새벽남한강에서 99123 - 강승희

새벽북한강에서 2020 - 강승희

새벽북한강에서 2024 - 강승희

새벽북한강에서 99110 - 강승희

새벽북한강에서 9981- 강승희

새벽정선가는길 99121 - 강승희
형식적인 측면에서 강승희의 작품에 나타나는 독자적인 정서를 축출해보면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제시될 수 있다. 우선 블랙의 색면과 여백 사이에 나타나는 넉넉한 시각적 긴장이 그것이다. 작가는 대체로 대상의 세부적인 묘사를 피하기 위해 이미지를 양괴로 파악하고 있으며 이를 다시 화면의 평면적 바탕 위에 넓게 펼친다. 단색의 면으로 표현된 건물군이나 강물 또는 하늘은 청흑의 색면과 여백의 공간에 의해 내적 질서를 구축한 채 직관적 울림을 자체에 품게 된다. 또한 화면의 공간을 가르는 가로등의 수직선과 여백에 날리는 필선효과는 화면의 단조로움을 제거하고 전체의기운을 자극하는 요소들이다. 강승희의 최근작업은 대상에 근거하면서도 화면의 내적 질서에 충실한 면모를 취하고 있으며, 각종 판화기법을 수렴하여 종합적인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서울의 일상적 풍경을 동양적 정서로 풀어내는 강승희의 근작들은 도시인의 삶과 그 흔적물에 대한 애정이 깃들여 있다.
<미술평론가 김영호의 평론 중에서>
■ 저 새벽을 열고 봄이 오길 기다립니다.
새벽이라는 힘 찬 기지개 없이 깨어나기 보다
홰를 치고 아침을 여는 새들처럼
이월의 해빙을 맞이하렵니다.
2007.2.9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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