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산그림자

십이월의 건널목에서

먼 숲 2007. 1. 26. 13:36

 

 

 

 

 

 

 

 

 

 

 

 

  

 

 

 빨간 깃발을 흔드는 역무원의 수신호와 함께 차단기는 내려지고 버스는 얌전히 건널목 앞에 멈춰 서 있다. 창 밖으로 내다 보는 오전 8시의 하늘이 안개속인 듯 흐려져 있고 잿빛 하늘 아래 아직 꺼지지 않은 미등의 불빛이 따사롭다. 눈이 오려나, 축축한 바람이 차창에 하얗게 서리는 아침이다. 차창으로 내다 뵈는 무서리 내린 텅 빈 벌판에 점점이 까마귀떼 날아 오르고 갯둑엔  냉큼 모가지만 밀어 올린 갈대꽃이 까치 둥우리처럼 무리지어 흔들거린다. 그러나 잠시 머문 십이월의 풍경이 스산하지 않다. 찰나의 순간, 굽어진 기차가 지나고 건널목을 빠져 나간 기차는 애벌레처럼 길게 기지개를 펴고 일직선을 그리며 사라진다. 무심히 바라보는 기찻길의 소실점에서 눈이 내린다. 다시 차단기가 올라가고 덜컹거리며 버스가 지나간다. 그래, 건너는 세월에 이유를 물을 필요가 없다. 우린 길을 가기 위해 잠시 교차로에서 서 있을 뿐이다. 세월은 오고 가고 건너며 어디론가 떠날 뿐이다. 십이월의 건널목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쓸쓸해 하지도 말자. 우리도 사라지는 풍경일 뿐이다.

 

 

2006.12.9일.   먼     숲

 

 

  

 

 

 

 

 

 ■ 음악: 아침 출근 풍경을 묘사한 재미 작곡가 김 건의 " 7th train O8:30 "(지하철 7호선, 오전 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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