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겨울 방학

먼 숲 2007. 1. 26. 08:19

 

 

 

 

 

얼마 전 아이들이 방학을 맞이하여 루미나리에의 오색불빛이 수를 놓은 시청앞 광장을 다녀왔다고 한다. 작년 년말부터 나도 빛의 예술이라는 로맨틱한 루미나리에가 찬란한 거릴 걷고 싶었으나 몇년전 서울의 중심에서 떠나 변두리로 돌다보니 광화문 네거리를 가려면 우정 시간을 내야하는 처지라 마음뿐 쉽게 가지지가 않았다. 일년에 한 두번 서울의 중심을 들어서다 보니 오래 전 친숙했던 길도 낯설고 복잡하게 느껴졌다. 가을 쯤 청계천 복원시 들러 보았던 서울의 한 복판은 많이 달라지고 새로워져 있었다. 밤 늦게 집에 돌아오니 아이들은 시청앞 광장에서 스케이트를 탔다고 즐거워했다. 처음 스케이트를 탄 애들은 루미나리에의 화려함은 잊어 버리고 스케이트를 신고 얼음판을 돈 것에 흥분되어 있었다. 일찍 퇴근하여 같이 즐겨 주길 바라던 아이들에게도 미안하기도하고 모처럼 나도 스케이트를 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컷다.

 

십여년 전만 해도 서울 근교 들판엔 십이월이면 야외 스케이트장이 만들어져 사방으로 만국기를 휘날리며 날이 추워지길 기다렸고 방학을 맞은 아이들은 낮이면 그 곳에서 썰매와 스케이트를 지치며 신나게 추운 겨울을 녹여버리곤 했었다. 그러한 겨울의 풍경이 몇년전부터 사라져 버리고 커다란 논을 막아 만든 야외 스케이트장은 이곳에선 거의 볼 수가 없다. 이 또한 세월의 변화이리라. 롤러 스케이트에서 인라인 스케이트가 보급되면서 사계절을 야외에서 스피드를 즐길 수 있으니 겨울이면 유명세를 떨치던 스케이트는 멀어져 갔다. 더구나 이상 기온에 겨울이 봄처럼 따뜻해지는 알 수 없는 현상에 얼음판 구경은 점점 힘들어졌다. 또한 경제적인 富는 스키장과 실내 스케이트장이나 대형 눈 썰매장을 만들며 돈 드는 겨울 스포츠로 탈바꿈 되고 밖으로 나 돌던 아이들은 컴퓨터가 친구가 된 후 방안에서 혼자 노는 감옥살이 생활로 변하였고 방학내내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는 바쁜 시간이 되고 말았다.

 

 

 

 

 

 

 

새삼 여유롭던 우리의 유년시절이 그립고 즐거웠다는 생각으로 가득하지만 변화된 요즘의 삭막한 방학 생활을 달리 변화 시킬 수 없이 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이들의 방학을 지켜 보기만 한다. 돌이켜 보니 우리의 겨울방학은 동화속 같았다. 내가 살던 모든 곳이 재미난 놀이터고 내가 이웃하던 모든 아이들이 친구가 되어 같이 어울려 놀았으니 그 얼마나 즐거웠던가. 눈이 오면 눈을 쓸어 서로에게 길을 내어 눈 싸움을 하고 낮이면 동산에 올라 비료푸대를 깔고 앉아 눈 썰매를 타며 망아지처럼 눈밭을 뛰어 다녔다. 무릎까지 눈이 많은 해엔 산토끼나 새를 잡는다고 온 야산을 헤메기도 했다. 살을 에는 추위에도 처마에 늘어진 고드름으로 칼쌈도 하고 우두둑 우두둑 얼음을 빙과처럼 씹어 먹기도 하다 추우면 논두렁이나 둑방가에 모여 썩은 말뚝을 모아 알불을 놓거나 논두렁을 태우며 추위를 녹였다.

 

농지 정리가 되지 않아 관개수로가 없던 그 때는 마을마다 제일 낮은 수렁배미 논들은 높은 둑방이 있어 가을내 가둬 둔 논물이 저수지가 되고 한 겨울엔 넓은 빙판이 되어 최상의 스케이트장이 되었다. 내 어린 시절엔 비싼 스케이트 대신 대부분 썰매로 유리처럼 매끄럽고 단단한 빙판을 질주했다. 못 하나 철사 한 줄도 귀했던 그 시절, 칼날같은 날을 단 한날 썰매는 날렵한 속도에 무척 부러움의 대상이였다. 그래도 동네에 부잣집 아이들 서너명은 은빛 스케이트가 있어 제비처럼 빙판을 날아 다녔고 언제 저 스케이트를 신어 볼까 하는 꿈만 꾸게 했다. 겨울이 깊어 정월이 되면 시내가 가까운 가장 큰 스케이트장은 군내 스케이트 대회가 열렸고 개학이 되면 누가 일등을 했다는 소식이 학교에 쫙 퍼지면서 그 앤 스타가 되었다.

 

 

 

 

겨울이면 시골은 한가한 편이다. 그래선지 여름방학때는 일하느라 놀지도 못하던 아이들도 겨울방학이면 방학숙제는 멀리 밀어 두고 놀기에 정신이 없었다. 뒷산으로 몰려서 나무를 하러 가기도 하고 날이 따슨 오후엔 넓은 마당에 모여 구슬치기,딱지치기, 자치기에 해저녁이 되도록 놀았고 주머니마다 구슬과 딱지가 가득했다. 모두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이집 저집 몰려 다니며 노느라 여름이나 겨울이나 공부는 방학생활이란 것을 서로 베끼고 나면 변변하게 방학 숙제를 한 것이 없었던 것 같다. 공부보단 자연의 일부분처럼 동화되어 뛰어 놀던 우리의 겨울은 찬바람에 손발이 트고 거칠어졌지만 봄이 되면 푸른 새싹이 돋을 건강한 겨울나무처럼 자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겨울방학은 새 학년을 맞을 설레임속에 해마다 바지가 껑충해지게 부쩍부쩍 커가고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학교 친구들 모두가 학원의 스케쥴에 얽매여 서로가 연락하고 만나는 것조차 폐가 되는 단절된 시간이다. 종일 먹고 집안에서 뒹구는 아이들의 비만이 걱정되어 좀 나가 놀라 하여도 놀 친구가 없다고 TV와 컴퓨터에 의존하고 체험학습이란 방학과제는 부모들이 따라나서야 할 일이 많다. 그러나 아이들 사교육비에 허리를 휘청거리느라 같이 놀아 줄 한가한 시간이 많지 않은 부모도 많으니 방학을 맞은 아이들은 지겹고 심심하다고 투정이다. 방학이면 고립된 섬처럼 떨어져 생활하는 삭막한 아이들을 보며 아이들 뿐 아니라 벽을 쌓고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의 생활이 개탄스럽기만 하다. 온 마을의 산과 들이 놀이터가 되고 온 동네 사람들이 어울려 사랑방에 모여 살던 옛 시절이 이미 아련한 기억이지만 그 해의 즐거웠던 겨울이 아랫목처럼 그립기만 하다. 식어진 추억의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활활 타오르는 아름다운 불씨를 골라낸다. 종종거리고 사는 이 겨울 나도 겨울방학의 여유를 즐길수는 없는지.....

 

 

2006.1.16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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